[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로 표현하는 등 이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유하(66) 세종대학교 명예교수가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6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 명예교수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25일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1심 무죄 선고를 받고 서울동부지방법원 법정을 나서고 있다. 김범준 기자 nunc@ |
박 명예교수는 2013년 출간한 '제국의 위안부'를 통해 위안부가 매춘이자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다고 기술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2015년 불구속 기소됐다.
앞서 1심은 박 명예교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교수가 저술한 주요 동기는 그 나름의 한일 양국의 화해 및 신뢰 구축 목적"이라며 "고소인들에 대한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특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2심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그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박 명예교수가 허위사실을 적시하고 그로 인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으며, 고의도 있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일본 정부와 군부가 아시아 전역에 위안부 수용소를 설립하는 데 관여한 사실이 명백하고 여성 피해자들은 의사에 반해 엄청난 성폭행을 당한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박 명예교수가 책 일부에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해 이를 접하는 독자들은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위안부에 들어가 성매매를 했고, 일본군과 정부가 강제 동원을 하지 않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며 "이는 객관적 사실과 다른 허위 사실"이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독자로서는 (책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전체보다는 자신이 위안부라고 밝힌 피해자들을 떠올리게 된다"며 1심과 달리 피해자도 특정된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박 명예교수의 표현을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고, 명예훼손 혐의로 처벌할 만한 '사실적시'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박 명예교수는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본 문학과 한일 근현대사를 연구하던 중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결과로 이 사건 도서를 발표했다"며 "그 과정에서 통상의 연구 윤리를 위반했다거나 피해자들의 자기 결정권, 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이들의 존엄을 경시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이어 "해당 도서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에 비춰 박 명예교수가 검사의 주장처럼 일본군에 의한 강제 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행위를 했다거나, 일본군에 적극 협력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 사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부의 전체 규모나 조선인 비율에 비춰 조선인 위안부를 구성원 개개인이 특정될 수 있는 소규모 집단이거나 균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라고 보기 어렵고, 박 명예교수의 각 표현이 피해자 개개인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의 진술에 해당한다고도 보기 어렵다고도 판단했다.
개인이나 구성원 개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소규모 집단이거나 균일한 특성을 갖고 있는 집단에 관한 과거의 구체적 사실의 표현은 사실 적시에 해당할 수 있으나, 이를 넘어서는 집단에 대한 일반·추상적 표현은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볼 여지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끝으로 재판부는 "박 명예교수의 표현이 학문의 자유로서 보호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은 검사가 증명해야 하는데, 원심은 각 표현이 명예훼손 혐의의 사실 적시에 해당함을 전제로 일부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해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의 사실 적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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