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수의사에게 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박정대 부장판사)는 유족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가정법원. 2022.01.14 pangbin@newspim.com |
B회사에서 수의사로 근무하던 망인은 지난 2020년 초 과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2020년 말 신제품 출시 과정에서 제품의 주요 성분인 오메가3의 함량 표시 관련 문제 등으로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들은 "망인은 스트레스로 정신적 인식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자해 행위를 한 것으로 망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회사는 망인이 업무로 인한 압박보다는 개인적인 완벽주의 성향과 업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현실로 사망한 것이라며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근로자가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돼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이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산업재해보상법 제37조에서 말하는 업무상 재해의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 증명이 있다고 봐야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망인은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것으로 보이고 경제적 형편과 관련해서도 달리 궁핍하다거나 과도한 채무가 존재했던 사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망인에게 업무상 사유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발병했다는 것 외에 달리 망인의 죽음을 설명할 수 있는 동기나 계기가 보이지 않는 이상 망인의 완벽주의적 성향이 우울증 원인 중 하나였다고 보더라도 업무상 스트레스가 개인적 성향과 결합하여 우울증을 악화시켰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망인의 유서에 기재된 '부족함', '바보같음' 등의 스스로에 대한 자책 표현 역시 맥락에 비춰볼 때 전적으로 회사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개인적 요인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는 전제에서 이뤄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며 원고의 청구를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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