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김정태 건설부동산 전문기자= 정부의 1·10 부동산대책은 예상했던 것 보다 광범위한 내용이 다뤄졌지만 핵심은 도심공급 활성화다. 특히 재건축·재개발 등 도심재정비사업의 '패스트 트랙'과 1기신도시 특별법 후속조치는 윤석열정부의 정책의지가 분명하게 읽혀지는 핵심실행 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도심공급의 걸림돌이었던 안전진단을 '사실상 폐기'한 것은 파격이었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일산 1기신도시 노후아파트 현장에서 민생토론회를 주재하면서 "규제를 아주 확 풀어버리겠다. 준공한 지 30년이 지난 주택은 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패러다임의 전환을 선언했다.
서울 노원구 아파트 모습. [사진=이형석 기자] |
다만 일부 언론에선 아예 안전진단이 완전히 폐지된 것으로 보도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안전진단 없이도"라고 말한 윤 대통령의 워딩이 완전 폐지로 받아들이면서 언론조차도 혼선을 빚은 것. 하지만 개별 재건축 추진 단지에서의 안전진단은 현행에선 첫 단계의 허들로 잡혀 있는데, 개선안에선 이를 없애고 재건축사업 인가 전까지 통과되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사업인가 전까지 6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을 '입안제안'과 '정비구역 지정 및 정비계획 수립' 등 2단계로 압축시키고 그 과정에서 안전진단을 준비해 통과하면 된다는 얘기다.
또 본지가 '사실상 폐기'라고 표현한 것은 안전진단 검사의 방향이 확 바뀌어 문턱이 낮아졌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대책 발표 다음날인 11일 기자들과의 첫 기자간담회에서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안전진단의 평가는 노후도와 생활불편에 초점을 맞춰 개편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30년 이상된 아파트 단지의 주차부족, 층간소음, 누수 등의 문제가 새 안전진단의 기준으로 내세워질 단적인 예로 꼽았다. 박 장관은 "1기 신도시에선 비바람을 막아주는 게 중요한 요소였지만 이젠 그게 다가 아니다. 이젠 편안히 살고, 넷플릭스도 보고, 사회활동이 벌어지는 곳이 집"이라며 집의 개념이 변했음을 강조하면서 주거의 질을 높이는데 국민의 동의를 구하겠다고 했다.
첫 단추를 바꾸니 단축효과는 확실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건축 기간이 평균 13년 이상 걸리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안전진단에 1년, 추진위 구성부터 조합 설립까지 2년 등 3년을 단축시킬 수 있게 된다. 특히 서울의 경우 2~3년 단축할 수 있는 신통기획까지 적용된다면 서울 재건축단지는 5∼6년 단축이 가능한 셈이다.
재건축 추진 패스트트랙 절차 [자료=국토부] |
1기신도시에선 안전진단이 아예 '통합 재건축' 단계에서 면제된다. 일산·분당·평촌·중동·산본 등 1기 신도시와 잠실·목동 등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대상지들 중 여러 단지들을 묶어서 한 번에 재건축하는 경우에 한한다. 이 경우 역시 단축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주거형태가 혼재돼 있는 재개발은 특성상 안전진단이 아닌 노후도 비율로 보는데 이 또한 대폭 낮춘다. 신축빌라나 새 건물이 지어졌더라도 정비구역 내 노후도 요건을 60%로 완화해주고 촉진지구로 지정됐을 경우는 50%로 더 낮춰주도록 했다. 현행 기준으로 30년 이상 노후 건축물이 2/3이상이 돼야 가능하다.
이밖에도 도심공급을 촉진하기 위한 여러 방인이 제시됐는데 이 가운데 재건축 부담금을 추가 완화한 것도 눈에 띈다. 지난해 국회에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에 관한 법률(재초환) 개정안이 통과되긴 했지만 정부의 원안에 미치지 못했다.
당초 정부안은 초과이익 기준을 1억원, 부과구간 7000만원으로 높이겠다고 발표했지만 개정안은 부과금 부과 초과이익 기준을 8000만원, 부과구간 단위는 5000만원으로 낮췄다. 정부의 안대로도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들은 재초환 수혜 대상에서 빠지게 되는데, 국회통과 안대로라면 서울 외곽 재건축 단지 조차 사업성이 안 나오게 된다. 그래서 부담금 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초과이익에서 제외해주는 방식으로 조합원의 부담금을 낮춰주기로 한 것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도심공급 활성화에 진심을 보이고 있지만 정작 시장은 들썩일 정도는 아니다. 정부의 예상대로 재건축과 노후신도시 사업이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시하는 반응이 적지 않다. 실질적 걸림돌의 변수가 해소되지 않은 탓이다.
일단 정부가 발표한 안전진단 개선책은 법 개정 사안이다. 국회 통과가 필수라는 얘기다. 다수 의석수를 차지하고 있는 야당이 정부의 파격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재건축단지들은 '말짱 도루묵' 신세가 된다. 당장 정부가 자신하던 '실거주의무 폐지'도 지금까지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정책신뢰성을 떨어뜨린 예가 있지 않은가. 이래서 일각에선 '총선용 대책'이란 냉소적 시선도 보낸다.
더 큰 변수는 결국 돈 문제다. 조합원의 부담금이 치솟으면서 재건축 추진이 중단되는 사례가 급격히 늘고 있어서다. 상계주공 5단지의 경우 조합원 추가분담금이 5억 원대로 알려지면서 사업성 자체가 어렵다는 진단이다. 정부의 재초환 완화에 재건축 부담금 추가 완화 조치가 이어진다 해도 실질 부담금이 얼마나 낮춰질지는 미지수다.
부담금의 급상승은 치솟는 공사비와도 관련이 깊다. 국내 재건축 단지인 둔촌주공 사례 뿐만 아니라 재개발 지역 곳곳에서 조합과 시공사와 갈등 때문에 공사 중단 또는 아예 시공사가 사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국토부는 이번 대책에서 지자체 도시분쟁조정위를 통해 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효력의 구속력을 높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치솟는 공사비를 인위적으로 막기도 어렵고 조합이 이를 수용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조속한 도심공급'에 가장 큰 장애 변수로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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