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노연경 기자 = "마빡에 쪽방촌이라고 써다니나요. 똑같은 이웃주민이에요."
서울시 창신동 쪽방촌 인근에서 목욕탕을 운영하고 있는 이태석(77) 씨는 '쪽방촌 사람들을 받기 시작하면 일반 손님들이 싫어할 게 걱정되지 않았냐'는 질문에 발끈하며 이처럼 말했다.
23일 서울에는 재난같은 한파가 찾아왔다. 이날 서울 최저 기온은 영하 14도, 올해 들어 처음으로 수도계량기 '동파 경계' 단계가 발령됐다.
서울 최저 기온이 영하 14도까지 내려간 23일 서울역 인근 쪽방촌에 '밤추위대피소'를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있다.[사진=노연경 기자] |
서울시는 이런 강추위가 찾아올 날을 대비해 올해부터 쪽방촌 인근 목욕탕과 협약을 맺고 '밤추위대피소'를 운영하고 있다.
쪽방상담소에서 받을 수 있는 쿠폰으로 무료로 목욕을 할 수 있는 동행목욕탕 8개소를 대상으로 4개소를 밤추위대피소로 꾸렸다.
이씨가 운영하는 창신동 목욕탕은 밤추위대피소까지 운영하는 4개소 중 하나다. 그는 2000년부터 이곳에서 목욕탕을 운영했다. 24년을 이 동네에서 보낸 그에게 쪽방촌 사람들은 그저 다른 이웃과 다를 바 없는 동네이웃이다.
쪽방주민들이 무료로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서울시가 지급하는 동행목욕탕 이용권.[사진=노연경 기자] |
이씨는 "여유있는 사람들이야 언제든 씻기 좋은 환경에서 살지만, 없는 사람들은 목욕탕 올 돈 만원으로 밥 한끼 먹는 게 낫지 않겠냐"며 "평상시에 알고 지낸 이웃들 받으면 되는 거니까 혹서기때부터 사업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새는 복지정책이 좋아져서 나라에서 에어컨까지 설치해준다고 하지만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은 냉방비 아까워서 에어컨도 한사코 거부한다"라며 "요샌 난방비 아끼려고 하룻밤씩 목욕탕에서 자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했다.
서울시가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한파가 오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달 1~21일 쪽방주민 2945명이 동행목욕탕을 이용했다. 밤추위대피소 이용자는 531명이다.
서울시는 2023년 쪽방주민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밤추위대피소 이용자가 60일간 2500명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21일간 5분의 1가량이 밤추위대피소를 이용한 것이다.
해당 실태조사에서 '겨울 춥다'고 응답한 쪽방주민은 약 30% 수준으로 서울시는 최근 5년간 한파주의보 발효일수 19일을 적용해 이용 인원을 결정했다.
한 쪽방상담소 직원은 "재난같은 날씨에 가장 취약한 게 쪽방촌 주민들이다 보니 오늘같은 한파가 오면 밤낮 없이 주민들을 살핀다"라며 "재난 같은 날씨에도 큰 사고가 없는 이유는 한파가 오기 전부터 미리 대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ykno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