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국가정보원 대변인이 언론 인터뷰 과정에서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종북세력이 활동할 가능성이 많다"고 발언한 것은 운영자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오늘의 유머 운영자 이모 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앞서 국정원은 지난 2009년 2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오늘의 유머'를 포함한 다수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특정 정당 또는 정치인들을 지지·찬양하거나 반대·비방하는 게시글과 댓글을 작성하고 글에 '추천(찬성)' 또는 '비공감(반대)'를 눌러 여론을 조작했다.
당시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지난 2018년 대법원에서 징역 4년 및 자격정지 4년이 확정돼 복역하다 지난해 8월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오늘의 유머 운영자 이씨는 국정원의 여론조작 활동으로 게시물 평판 시스템이 무너지는 등 사이트 운영에 손해를 입었다면서 이 사건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2013년 1월 국정원 대변인이 "오늘의 유머가 종북세력이나 북한과 연계된 인물들이 활동할 가능성이 많은 공간으로 본다"고 발언한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 재판부는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 사건 사이버 활동으로 오늘의 유머 사이트 게시물 시스템이 붕괴되는 등의 장애가 발생했다거나 그로 인해 운영자인 원고에게 재산적 손해가 발생했음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또한 국정원 대변인의 발언만으로 이 사건 사이트가 종북사이트라는 오명을 입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국정원 대변인의 발언으로 이씨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인정하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때는 사용된 표현뿐만 아니라 발언자와 그 상대방이 누구고 어떤 지위에 있는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 사건 표현의 주체는 국정원 대변인으로 기관 전체의 입장을 대표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다. 그가 언론 인터뷰 자리에서 특정 사이트를 두고 종북세력과 연계됐을 가능성이 많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은 단순한 의견 표현에 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남북이 분단되고 국가보안법이 실정법으로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종북이라는 표현이 갖는 부정적인 인상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사이트가 종북세력과 관련있다는 표현은 원고가 다년간 이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쌓아 올린 명성, 신용 등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침해하는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위자료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종북이라는 표현은 시대적·정치적 상황 혹은 관점에 따라 의미와 이에 포함되는 범위가 유동적이고 상대방이 된 사람의 인식 역시 가변적이어서 그 의미를 객관적으로 확정하기 어렵다"며 "이 사건 종북 관련 발언은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기 보다는 이 사건 사이트에 대한 광의의 정치적 평가 내지 의견표명으로 볼 여지가 많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종북 관련 발언으로 인해 사이트 운영으로 쌓은 원고에 대한 객관적인 평판이나 명성이 손상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고 주문했다.
jeongwon102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