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정탁윤 기자 = # 40대 직장인 A씨는 지난 설 연휴 국도를 이용해 귀경길에 올랐다. 경북 문경의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나다 차에 기름이 떨어져 인근 주유소에 들렀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이라 당연히 영업을 하는줄 알고 들렀는데, 자세히 봤더니 '휴업' 표시가 붙어 있었다. 도로변에 다른 주유소는 아예 주유기가 흉물처럼 망가져 있는 곳도 있었다. A씨는 30분 이상을 찾아 헤멘 끝에 주유를 할 수 있었다.
한적한 대로변에 이른바 '좀비 주유소'가 장기간 방치되며, 환경오염 및 주민 불편을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전국에 폐업하지 않고 '휴업'상태로 방치중인 '좀비 주유소'는 2000곳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14일 석유관리원 및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페트로넷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주유소는 1만1023개로 집계됐다. 주유소 현황 집계를 시작한 지난 2003년(1만849개) 이후 20년 만에 최저치다.
전국 주유소는 지난 2007년 1만2000곳을 넘어선 이후 2010년 1만3004개까지 늘어났다. 그러던 전국 주유소 규모는 지난 2018년부터 1만2000곳 아래로 줄었다. 매년 평균 150곳이 넘는 주유소가 문을 닫고 있다. 전기차 보급 확대와 1% 수준의 낮은 영업이익률로 경영난이 심화하며 더이상 버티기 힘든 구조 때문이란 설명이다.
서울시내 한 주유소 모습 [사진=뉴스핌 DB] |
문제는 외관상 영업중인지 아닌지조차 구별이 안되는 '휴업' 주유소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폐업비용이 평균 1~2억원, 많게는 3억원 이상이라 일단 휴업을 해놓고 폐업처리는 늦추고 있는 것이다.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주유소 한 곳 폐업하는데 시설물 철거와 토양 정화 등에 최소 1~2억원의 비용이 드는데, 당장 돈을 마련할 수 없는 업주들이 그냥 지켜보는 상황"이라며 "주유소 부지를 다른 부지로 전환해서 팔 수 있으면 그 돈으로 폐업비용을 마련하겠지만 부지 매각도 잘 안되는 주유소는 그냥 방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알뜰주유소와의 출혈경쟁도 일반 주유소가 문을 닫게 하는 원인으로 꼽고 있다. 알뜰주유소는 판매 물량의 상당 부분을 정부에서 싸게 공급받는다. 일반 주유소보다 리터당 30~60원 정도 싸고, 정부는 알뜰주유소에 시설개선지원금도 지급한다.
휴업한 주유소가 제대로 폐업할 수 있게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현행법상 석유판매사업자들은 공제조합을 통해 전업 및 폐업 자금을 일부 지원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지원사업을 할 공제조합이 설립이 수 년째 지지부진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제조합 설립 얘기가 나온지 몇년 됐지만 선거철에만 반짝하고 아직 제대로된 조합 설립이나 지원은 없는 것 같다"며 "제대로 폐업도 못하고 방치된 주유소들에 대한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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