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Nothing about us, without us"(우리 없이 우리에 대해 말하지 말라)
지난 2004년 세계장애인의 날 슬로건으로 사용된 이 문구는 장애인 당사자 없이 장애인 정책을 수립하지 말라는 뜻으로 장애 인권 운동에서 빠질 수 없는 문장이다. 장애인 참여원칙에 기초해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와 기회를 보장해 달라는 외침은 지난 수십년간 우리사회에 끝없이 쏟아졌다.
그리고 오늘, 윤석열 정부에서는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를 전제로 한 개인예산제 도입을 국정과제로 삼고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지출 규모가 OECD 회원국 대비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고, 개인예산제 급여 범위와 제반 여건이 미약해 우려의 목소리가 짙다.
◆ 올해 등록장애인 전체인구 5.1%…복지지출은 OECD 하위권 머물러
20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등록장애인은 264만1896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새롭게 등록한 장애인은 8만6287명이다. 등록 장애인 비율은 전체 인구 대비 5.1%로 65세 이상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겼다.
장애 발생 요인은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로 구분된다.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장애인의 80%는 후천적 질환이나 사고로 인해 발생한다. 선천적 원인은 전체의 7.9%에 불과하다. 장애인이 아닌 사람은 아직 장애인이 될 확률이 낮은 '비장애인'일 뿐이다.
OECD 국가 GDP 대비 장애인 복지지출 규모 [자료=뉴스핌 DB] |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복지 지출은 인색하다. OECD 국가 GDP 대비 장애인 복지지출 규모를 보면 2019년 기준 0.71%로 OECD 평균치(1.98%)에 한참 못미친다. 반면 북유럽 국가인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각각 4.49%, 3.37%의 높인 비율을 보였다. 이웃 국가인 일본은 1.12%로 나타났다.
GDP 대비 장애인복지 현금급여 비율은 더욱 처참하다. 같은 기간 OECD 평균 현금급여 비율은 1.56%지만 우리나라는 0.39%로 약 4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OECD 평균 현금급여 비율이 1990년대 1.99%에서 지속 감소하는 추세임을 감안해도 우리나라의 현금급여 비율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로써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장애인 복지지출 순위로는 최하위권에 머무르게 됐다.
이한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장애인 예산 추이를 보면 예산이 굉장히 많이 확대되어 가고 있다"면서도 "OECD 국가와 비교했을 때 굉장히 미약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 복지지출이 적을수록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정책의 범위 또한 줄어든다.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은 서비스 지원 방식과 이용자의 선택권이 제한된 구조다. 정부가 일선 기관의 서비스를 효율성으로 판단해 재정을 지원하다 보니 기관에서는 같은 서비스라도 한 명의 장애인이 필요한 것이 아닌 여러 명의 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만을 개발·유지한다.
이에 정부는 장애인의 당사자성을 인정해 서비스 결정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장애인 개인예산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장애인 개인이 원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해 삶의 주체로서 자기 결정권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정부는 2022년 개인예산제 기초모델을 개발하고 지난해 모의적용을 거쳐 올해와 내년 시범사업을 시행한다. 오는 2026년에는 본격적으로 개인예산제를 도입해 전국 등록장애인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 윤정부 국정과제 장애인 개인예산제…급여·인프라 구축해야
복지부는 올해 개인예산제 운영 사업비로 전년(5억8000만원) 대비 66.4% 증액된 9억6500만원을 편성했다. 복지부는 6월부터 지자체 8곳과 210명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운영한다.
다만 장애계에서는 개인예산제 시범사업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현재 개인예산제 시범사업은 장애인 활동지원 급여 20% 범위에서 개인예산을 할당하는 방향으로 정해졌다. 새로운 급여가 지원되는 게 아니라 기존에 사용하던 급여에서 20%를 개인예산제로 사용하다 보니 기존 급여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예산제 모의적용 사업 신청자 123명 가운데 7명은 본인부담금 납부 부담으로 사업 참여를 포기했다. 또 가장 많은 참여 포기자(10명)가 발생한 활동지원 시간 부족도 문제가 됐다. 예산에 대한 총량을 늘리지 않는다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장애인 개인예산제 [자료=보건복지부] 2024.04.20 plum@newspim.com |
활동지원서비스 이용이 어려운 농·어촌 지역의 경우 장애인 복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있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예산이 생겨도 서비스를 이용할 기관이 없다면 말짱도루묵이라는 뜻이다.
이한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서비스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은 "실제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정책적인 급여량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개인예산제의 주요 취지인 자기 주도성과 유연한 급여 이용이 모두 허구가 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자원이 희박한 농어촌 지역에 살고 있는 장애인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기관이 많아져야 하고, 의사 능력이 부족한 이용자들도 본인을 위한 서비스를 설계할 수 있도록 이용자를 위한 조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지난해 개인예산제 모의적용 대상지역이었던 충남 예산에서는 건강기능식품 구매금액(85만8920원)과 장애 관련 소모품 구매금액(189만4000원)은 전체 금액(369만5920원)의 75%를 차지하면서 서비스 대신 현물 구매에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줬다.
이에 유명해 한국장애인개발원 정책지원팀장은 "지난해 모의적용의 경우 기간이 6개월로 짧다 보니 물품 구매가 많이 이뤄졌다"면서 "모의적용을 통해 다양한 욕구가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구매 부분이나 서비스 부문을 조금 더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개인예산제 모형을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원 시스템과 옹호 시스템을 병행하는 것도 놓쳐선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동석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예전 방식(정책)이 제대로 됐다면 개인예산제 자체가 필요가 없었던 것"이라며 "그런데 이전 시스템이 문제가 있다고 해서 개인예산제가 나온 거기 때문에 관련 예산을 많이 늘리는 등 정부의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료=보건복지부] 2024.04.18 sdk1991@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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