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스캠'은 상대에게 접근해 친분을 쌓은 뒤 돈을 요구하는 사기 행각이다. 범죄자는 사칭 계정과 가짜 범죄 사이트를 이용해 자신의 신분을 감춰 피해자들이 대처하기 힘들다. 뉴스핌은 로맨스 스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고, 범죄 피해를 줄이기 위한 수사·법적 제도를 소개한다.
[서울=뉴스핌] 방보경 기자 = 로맨스 스캠의 핵심이 '돈독한 관계'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심리적 지배'라는 진단이 나오면서 단어 자체를 재정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간관계를 이용한 '온라인 사기' 등 넓은 범주로 포괄하거나, '섀도우 스캠' 등 새로운 단어를 도입하는 식이다.
24일 수사기관과 전문가 등에 따르면 로맨스 스캠 범죄는 그루밍 범죄와 비슷한 수법을 보인다. 그루밍이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가해자를 잘 따르도록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심리적 메커니즘은 로맨스 스캠의 다양한 형태(친구, '썸'을 타는 상황, 연인, 전문 영역에서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 유명인과 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됐다.
김지은 상담공간 서로오롯 대표상담사는 이 같은 심리 상태가 사회심리학의 '문 안에 발 들여놓기' 개념과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단 한 발만 들여놓으면 사람들이 문을 열어준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라며 "처음에 무해해 보이는 걸 요구해서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후에 무리한 요구까지 들어주게 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상대방의 요청에 점점 둔감해진다는 것이다.
이어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이기 때문에 성인이 그만큼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며 "하지만 얘기를 나누며 피해자의 약점을 이용하거나 도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사기범이) '나는 진솔한 사람을 좋아한다. 나에 대해서 다 얘기했으니 당신도 솔직하게 말해달라'며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로맨스 스캠 범죄자와 피해자가 맺는 관계 중에서도 '연인 관계'가 가장 치명적인 이유다.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는 내밀한 대화나 개인 정보까지도 주고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사기범의 압박에 꼼짝없이 당하게 된다. 김지은 상담사는 "(사기범은) 피상적인 대화만 원하는 거라면 대화방을 나가겠다, 연인 사이에 너무 조심스러운 게 아니냐며 협박하는데 듣는 사람은 내가 관계에 대해 진지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범죄의 심각성에도 피해자들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높다. 언론 보도가 여러 차례 이어지고 있지만 '당하는 사람은 이유가 있다' '사리분별이 안 된다'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들이 전형적인 피해자의 모습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갖고 매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로맨스 스캠'이라는 단어가 사안을 가볍게 한다는 문제도 나온다. 비슷한 예로 '데이트 폭력' 역시 용어에 '데이트'가 붙어 심각성을 축소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로맨스 스캠 역시 '로맨스'처럼 비교적 가벼운 단어가 포함됐는데, 다양한 단어를 활용해 범죄를 다시 명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수정 교수는 로맨스 스캠을 '피해자와의 신뢰 관계를 악용하는 온라인 사기' 라고 표현했다.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로맨스 스캠을 '섀도우(그림자) 스캠' 이라는 단어로 대체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피해자는 "범죄자들이 우리의 사례를 듣고 적극적으로 공감해주는 척 하면서 거울처럼 스며든다"며 "당사자가 우리를 따라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 섀도우 스캠이라는 용어가 맞는 거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