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의사 집단행동이 장기화되면서 보건복지부가 추가로 예비비 편성을 요청했지만, 기획재정부가 병원의 자구책이 먼저라며 거부해 무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의료공백 사태를 최소화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2000억원 이상의 예비비를 투입했다. 병원 현장을 지켜온 의사와 간호사, 공보의들의 연장근로 인건비를 예비비로 지원해 왔다. 때문에 추가로 예비비가 편성되지 않을 경우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
28일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복지부는 의료공백 장기화에 따른 3차 예비비 편성을 기재부에 요청했지만, 기재부가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의료공백 대응에 언제까지 국민 세금을 투입할 수는 없다"면서 추가적인 예비비 편성에 앞서 의료계의 자구책도 동반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료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 재정 지원은 필요하지만, 전문의와 전공의, 간호사 등 의료인들에게 지급되는 인건비가 합리적이고 형평성에 맞는지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앞서 정부는 전공의 집단사직이 시작된 지난 2월부터 현재까지 총 두 차례에 걸쳐 예비비 2060억원을 투입했다. 예비비는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메꾸고 있는 의사 진료지원(PA) 간호사 채용, 교수·전문의 등 인건비로 활용됐다(아래 그래프 참고).
구체적으로 지난 3월6일 1285억원에 육박하는 1차 예비비 의결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된 건 교수와 전임의의 당직근무 등 인건비(580억원)였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을 교수와 전임의가 추가 근무하면서 발생한 지출이다.
지난달 29일에는 의료공백을 막기 위한 2차 예비비 의결안이 통과됐다. 2차 예비비는 775억원으로 인건비가 전체 예비비의 89.9%에 달한다.
정부는 의정갈등이 격화되면서 비상진료체계를 선포하고 건강보험재정 지원 방안도 마련했다. 건보재정은 이날까지 총 다섯 차례에 걸쳐 9893억원이 투입됐다. 예비비와 건보재정까지 합치면 총 1조1953억원이 지출됐다. 집단사직에 대한 공백을 국민 세금으로 막고 있는 셈이다.
건보 재정은 ▲상급종합병원에 대한 경증 환자 1·2차 병원 회송료 보상 ▲응급 환자 적시 치료 신속대응팀 보상 ▲중증·입원 환자 진료 전문의 지원 등에 사용된다. 반면 의료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료인들의 인건비는 정부의 예비비로 충당해 왔다.
하지만 기재부는 전공의 사직 사태가 장기화해도 예비비를 더 이상 편성하지는 않겠다는 내부 지침을 세웠다. 기재부 관계자는 "복지부에서 예비비에 대한 요구가 있었지만 기재부 내부적으로는 더 이상 예비비 지출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복지부는 의료공백에 따른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을 예비비가 아닌 건강보험재정 지출로 방향을 틀었다. 복지부는 전날 제13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열고 건강보험재정 1890억원 투입을 결정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복지부서 의사단체와의 신뢰 형성을 이유로 당직수당 등 인건비 예산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재정당국인 기재부로서는 적절하지 않다"며 "추가 예비비 편성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복지부는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현재 건보재정은 비상진료체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사용되고, 예비비는 신규 인력 또는 당직비 등 인건비로 쓰인다. 의정 갈등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인건비를 조달할 길이 끊긴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최대한 2차 예비비 내에서 해결하려고 한다"면서도 "사업 별로 (예산이) 약간 남거나 모자란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전국 211개 수련병원 전공의 출근율은 7.7%다. 전체 전공의 1만3756명 중 1065명에 불과한 수치다. 전공의 미복귀가 이어지면서 건보재정 등 재정 지출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전공의 사태 해결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휴진에 돌입한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환자와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4.06.17 mironj19@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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