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정부가 이달 내놓는 세법개정안에 상속세 세율과 과세표준 구간은 손질하지 않고 공제액만 상향조정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특히 28년째 고정된 일괄공제액을 현행 5억원에서 7억원 수준으로 소폭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추진했던 유산취득세 도입은 담기지 않기로 했다. 유산세 형식을 유산취득세로 전환해도 저출산이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 실정에서 세부담 완화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서다.
◆ 상속세 일괄공제 5억→7억 상향 유력…부자감세 우려해 소폭 조정
16일 기획재정부와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발표하는 세법개정안에 상속세 개편방안을 담을 방침이다.
다만 그동안 제기됐던 세율·과표 대신 공제액만 상향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더불어민주당의 부자감세 프레임에 휘말려 세법개정안이 국회 통과가 가로막힐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는 이미 지난 3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최대주주 할증평가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50%인데 할증(20% 가산)이 붙으면 최고세율이 60%까지 올라간다. 최대주주 할증평가를 폐지함으로써 사실상 세율 인하 효과를 거두겠다는 의미다.
여기에 기재부는 더불어민주당이 상속세 완화에는 공감을 표하면서도 세율·과표 조정에 대해선 부자감세 논리를 펼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업은 상속세율에 관심이 있지만 중산층은 공제액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이뤄진 일괄공제를 손 본 후 세율·과표 개편은 장기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의도다.
상속세는 1997년부터 28년간 일괄공제 5억원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통상 상속세는 배우자공제 5억원과 일괄공제 5억원이 적용된 10억원 초과분에 대해 과세한다.
그러나 지난 28년간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상승하면서 일괄공제 5억원이 너무 적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이 12억원을 돌파했다. 상속세 부담이 서울에 내 집 한 채 있는 중산층에게까지 넘어오게 됐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일괄공제가 5억으로 설정된 1997년에는 압구정 아파트 한 채가 5억이 채 되지 않았다"며 "그동안 자산은 훨씬 더 빠르게 축적됐는데 일괄공제 기준이 그대로인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의 세습의 기준점을 집 한 채로 본다면 현재 시점에서는 일괄공제를 5억이 아닌 20억 내외로 올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해외 주요사례 참고해 상속세 손질…공제 확대해 중산층 세부담 낮춰
기재부는 이번 상속세 개편 과정에서 해외 주요국의 사례를 참고했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은 유산세를 준용하는 미국의 사례를 들여다봤다.
미국은 2010년 최고세율을 45%에서 35%까지 인하한 데 이어 2012년에는 최고세율 구간을 신설하는 등 상속세 부담을 꾸준하게 덜고 있다. 또 2017년부터 기초공제액을 순차적으로 인상했는데 올해 기준 기초공제액은 한화 180억원(1361만 달러)에 이른다.
독일은 2010년 제2과세등급(형제자매, 양부모, 사위·며느리)의 최고세율을 기존 30%에서 15%로 절반가량 축소했다. 영국은 2015년 상속세 기초공제액을 유지하되 추가공제액을 인상하는 방향으로 개편작업에 착수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미국은 세율을 낮추고 공제액을 높여 자산가에 대한 과세를 정확하게 하고 있다"며 "중산층도 상속세 부담이 얹어지는 우리나라에 교훈이 될 것"이라고 했다.
◆ OECD 중 유산세 준용 국가 4개국…유산취득세 전환 안 담겨
유산세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내용은 이번 세법개정안에 담기지 않을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사망한 사람이 물려준 유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세를 준용한다. 사망인의 생전 누적 재산에 대한 세제 정산의 성격으로 부의 재분배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높이겠다는 취지다.
다만 OECD 회원국 38개국 중 상속 관련 세금을 부과하는 국가는 24개국인데, 이중 '유산세'를 준용하는 국가는 미국, 영국, 덴마크, 한국 등 4개국에 불과하다. 나머지 20개국은 '유산취득세' 방식을 택했다.
'유산취득세'는 전체 유산이 아닌 내가 물려받은 유산만큼 세금을 내는 제도로 '유산세'보다 합리적이라는 평가다. 현행 증여세도 '유산취득세' 방식이 적용된다. 그러나 저출산이 심한 우리나라는 '유산취득세' 효과가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분석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유산취득세는 자녀가 많을 경우 효과적일 수 있으나 현재는 무자녀 내지는 1인 자녀가 많은 상황이라 세부담 완화는 극히 적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plu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