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기락 기자 = 통신이 매개된 타인이 그 통신을 범죄에 이용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더라도 전기통신사업법위반죄의 고의성이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보이스피싱 등 사기 범죄에서 피해자의 통신과 연결하거나, 관여만 해도 '타인의 통신을 매개'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사기,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원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에 대한 상고심을 열어 유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환송했다.
A씨는 2023년 3월 대구 중구의 한 고시원에서 중계기 1대, 유무선 공유기 1대를 설치하고 인터넷망에 연결한 뒤, 보이스피싱 조직의 지시에 따라 유심을 중계기 특정 번호에 꽂았다가 다른 번호로 옮겨 꽂는 등의 범행으로 기소됐다.
A씨는 또 대구 동구의 한 빌라에서 같은 방법으로 총 47개의 휴대폰 번호를 관리하며 조직원들이 다수의 피해자들에게 전화하거나 문자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도록 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1심과 2심 재판부는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가 설치한 통신중계기나 유심 등이 범죄를 위한 전화 발신이나 문자메시지 발송에 이용된다는 사실에 대한 미필적 인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고, 고의나 공모 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상고심 쟁점은 타인통신매개 행위로 인한 전기통신사업법위반죄의 고의성 여부였다. 대법은 A씨에게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은 "타인통신매개로 인한 전기통신사업법위반죄의 고의는 전기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 사이의 통신을 연결해 준다는 것에 대한 인식을 요할 뿐, 더 나아가 통신이 매개된 타인이 그 통신을 범죄에 이용한다는 것까지 인식할 것을 요하지는 않는다"고 원심 판결을 지적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A씨에게 휴대폰과 중계기 등을 제공하고, 또 조직이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를 수 있도록 서로 공모했다는 게 대법 판단이다.
대법은 "전기통신사업법 제30조 본문은 '누구든지 전기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하여 타인의 통신을 매개하거나 이를 타인의 통신용으로 제공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한다"며 "'타인의 통신을 매개'한다는 것은 전기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 사이의 통신을 연결해 주는 행위를 의미"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위 조항의 문언과 입법취지에 비추어 볼 때 매개되는 통신의 당사자가 통신의 매개를 요청하거나 통신 매개 행위에 관여하였다 하더라도 위 조항 본문이 정한 '타인의 통신을 매개'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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