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김기랑 기자 = 가장 시급한 민생 현안 중 하나로 꼽히는 '국가 전력망 확충 지연' 문제가 제도적 기반 마련을 통해 활로를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국회에서 관련 특별법이 처리될 전망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오는 26일 열리는 산업특허소위에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안(전력망 특별법)'을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산중위는 지난 20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전력망 특별법을 비롯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고준위 특별법)', '해상풍력발전 보급촉진 특별법안(해상풍력 특별법)' 등 주요 에너지 법안들을 다음 소위 안건으로 확정·회부했다. 에너지 법안들이 국회 테이블에 오른 것은 이번 국회가 출범한 이후 처음이다.
앞서 전력망 특별법은 직전 21대 국회에서 여야 간 이견으로 인해 갈등을 빚다가 끝내 폐기된 바 있다. 당시 여야는 전력망 건설사업 시행 주체에 민간을 포함시키는 내용을 두고 대립했다. 여당이 해당 조항을 삭제하면서 합의점을 찾는 듯했지만, 다른 정쟁이 이어지다가 결국 국회 임기가 끝나며 자동 폐기 수순을 밟았다.
이번 국회에서는 전력망 구축 필요성에 대해 당적을 떠난 공감대가 형성되며 여야에서 모두 법안을 재발의했다. 현재 발의된 법안은 여야를 통틀어 모두 10개로, 이 중 접수 상태인 2건을 제외한 8건이 소관위 심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전력망 특별법은 전력망 건설 과정에서 가장 난관으로 꼽히는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관련 보상을 강화하고, 정부 차원의 개입으로 각종 인허가 절차에 속도를 더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여야 간 세부적인 내용에는 일부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대부분 비슷한 내용을 포함한다.
주요 내용을 보면 먼저 범부처 지원체계 구축을 위해 국무총리 소속의 전력망 위원회를 신설한다. 위원회는 갈등 중재와 실시 계획의 승인·변경, 제도 개선 등을 망라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밖에 5년 단위·30년 주기로 '국가기간망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정부가 나서 예비타당성조사 특례를 면제하며 건축물 등 딸린 사업에 대한 신속 인허가 처리 방안을 마련하는 내용 등도 규정했다.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는 에너지 복지 바우처 등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토지주에게는 조기 협의 인센티브를 지원하거나 보상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지역 주민에게는 재생에너지 사업을 지원하거나 보상 특례를 제공하는 내용 등을 명시했다.
지난 20일부터 국회가 법안 심사를 본격화함에 따라 연내 처리 가능성에도 청신호가 들어왔다. 여야 간 큰 이견이 없는 만큼 다음 소위에서 이철규 산중위 위원장 명의로 병합된 후 본회의까지 순탄히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전력망 특별법을 기반 삼아 전국 각지에서 수십개월째 지연되고 있는 사업들이 보다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오는 2036년까지 총 56조5000억원을 투입해 송전선로 2만2491서킷 킬로미터(C-km)와 변전소 336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동해안-수도권 ▲북당진-신탕정 ▲당진TP-신송산 ▲신시흥-신송도 등 대부분의 사업들이 최소 22개월에서 최장 150개월째 늦어지고 있다.
최근 경기 하남시의 동서울변전소 옥내화·증설 사업 불허 결정도 주민과 지방자치단체의 반발로 인해 전력망 건설이 지연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하남시는 전자파·소음 발생과 주민 수용성 결여 등을 불허 이유로 꼽았다. 현재 한국전력공사는 하남시를 상대로 불허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더구나 이미 우리나라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지속 확대해 온 행보와 달리 정작 이를 수용할 수 없는 전력망이 없어 보급에 차질을 빚고 있는 형편이다.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이 출력 제어로 인한 손해를 입고 있는 것은 물론, 이들의 수익 악화로 전체 전력 산업 생태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계통 불안정으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할 경우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인 철강·석유화학 등의 산업들이 최소 수십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을 공산도 크다.
미래에 발생할 문제는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전망된다. 현재 정부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 중인 상황으로, 이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도권으로의 대규모 전력 공급이 필수적인 선행 조건으로 손꼽힌다. 이에 실패할 경우 세계 각국이 필사적으로 주력하고 있는 첨단산업 육성에 뒤쳐지는 결과로 나타나 국가 경쟁력이 하락할 것으로 우려된다.
앞으로는 정부 차원의 개입으로 갈등을 중재하고 신속한 인허가 처리 등에 나설 수 있어 지지부진했던 사업들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가장 난관으로 여겨지는 주민 수용성 문제에 대해서도 조기 협의 인센티브 등 보상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해 주민 만족도를 보다 늘릴 수 있도록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다른 에너지 법안들의 처리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소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전력망 특별법에 한해서는 이미 여야가 합의를 이룬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가 나서 전력망 건설을 주도할 수 있게 된 만큼 사업들에 훨씬 속도가 붙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안산시 시화호 공유수면에 설치된 송전선로 모습. [사진=안산시] 2020.02.17 1141world@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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