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오늘은 한 두 팀 올까, 주말에는 더 휑하죠."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와 인접한 평택시 고덕동의 상가 밀집지역. 점심시간이 임박했지만 문을 연 식당을 찾기가 힘들었다. 어렵게 찾은 한 식당의 주인은 오랜만에 온 손님이 반가운 듯 맞이했다. 주인 A씨는 "삼성 안으로 배달은 가끔 하는데 오는 손님들은 뚝 끊겼다"며 "여기 앞 아파트에 살던 삼성 직원이 가끔 왔는데 못 본 지 한참 됐다"고 전했다.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임대 전단이 붙은 평택 고덕동의 한 상가 건물. syu@newspim.com |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인력들의 식사를 해결해야 할 이곳 상가 밀집지역은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다. 삼성전자가 공사를 일부 중단하면서 많은 인력들이 현장을 떠나면서다.
핵심 상권인 대로변 1층에서 장사를 하던 커피 가게가 문을 닫았을 정도로 발길이 뚝 끊긴 상황. 24시간 운영의 상징인 한 편의점은 불이 꺼진지 오래인 듯 했다. '당분간 문을 열지 않는다'는 편의점 주인의 쪽지는 시간이 꽤 지난 듯 낡았다. 이곳저곳 나붙은 '임대문의' 전화번호가 쌀쌀한 날씨와 함께 더 을씨년스럽게 다가왔다.
전국에서 하락세가 가장 높은 평택 부동산 시장의 침체 원인 중 하나도 삼성전자의 현 상황과 무관치 않다. 인근 아파트 임대를 하던 집주인 이 모씨는 "이 전에는 삼성 반도체 협력사가, 지금은 공사장 설계 회사가 월세로 얻어 직원들 숙소로 이용해 왔는데 내년 초 계약이 완료인 데도 재계약 이야기가 없다"며 "전·월세 수요가 붙어야 집값도 오르는데 삼성 협력사 직원들이 빠져나가면서 조금 올랐던 아파트 가격이 지금은 분양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공사현장 전경. syu@newspim.com |
◆세계 최대 반도체 공장 투자는 '심호흡' 중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는 부지 면적이 287만㎡로 이 곳에 3개 공장(P4·P5·P6)을 추가로 지을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로 완공 계획이나 가동 시기를 밝힌 적은 없지만 실제로 공사 인력들이 대거 떠나는 등 일부 공사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평택캠퍼스와 같은 대규모 공사 현장은 시장 상황 뿐 만 아니라 자재 수급 등 대외 환경으로 인한 공사 지연은 자연스러운 상황"이라며 "삼성전자는 글로벌 시황에 따라 수급 상황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택캠퍼스 공사를 수주한 건설사들이 공시한 계약 내용을 보면 실제로 공사 기간은 연장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4공장은 세부적으로 페이지1~4(Ph1~4) 등으로 나눠져 있는데, 삼성중공업은 페이지1 마감공사 종료일을 지난 10월에서 내년 2월로, 페이지2는 내년 2월에서 12월로 각각 옮겼다. 삼성E&A도 페이지1 변전소 등 공사를 이달 12월에서 내년 2월로, 페이지2 변전소 등 공사를 내년 2월에서 6월로 변경했다. 삼성물산도 페이지1 공사를 내년 2월로 연장했다.
◆TSMC는 저 멀리...中 추격부터 따돌려야 할 판
삼성전자는 가장 먼저 지어질 4공장에 메모리나 파운드리 공정을 가동할 예정이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대표적인 메모리반도체 D램은 저가 중국산 공세가 공급 과잉을 부추기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의하면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 1Gx8)의 평균 고정 거래가격이 7월의 2.1달러에서 11월 1.35달러로, 넉 달 동안 35.7% 떨어졌다. 스마트폰과 PC 등 수요 회복이 더디면서 고객사에 D램을 적극적으로 구매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다행히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여전히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파운드리 분위기는 조금 더 심각하다. 올 3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9.3%로 한 자릿 수까지 내려왔다. 지난 2019년 3분기 18.5%를 기록했던 시장 점유율의 절반 수준이다.
그 사이 대만의 TSMC와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2019년 3분기 32%p였던 TSMC와 삼성전자의 격차는 올 3분기 55.6%p까지 벌어졌다. 거꾸로 후발주자와의 격차는 더 좁혀졌는데, 중국의 SMIC와의 격차는 같은 기간 14.1%p에서 3.3%p까지 줄었다. 이제 중국업체의 거센 추격을 더 경계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탄핵 정국' 후폭풍...반도체 경쟁력 제고는 '시계제로'
삼성전자는 지난달 쇄신 인사를 단행하며 경쟁력 회복에 고삐를 당겼지만 예상치 못한 탄핵 정국의 후폭풍에 휩싸였다. 당장 반도체 보조금 지급에 부정적인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응할 골든타임을 놓치즌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삼성전자는 미국 정부로부터 64억 달러(약 9조원)의 보조금을 받는 대가로, 미국에 400억 달러(약 57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었다.
반도체업계는 보조금 협상이 지연될 경우 미국에 첨단 공정의 파운드리 공장을 지어 TSMC를 따라잡겠다는 삼성전자의 계획이 늦춰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 보조금은 줄고, 오히려 트럼프 2기 정부의 자국 생산 요구가 거세질 경우 삼성전자의 비용 부담은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에서는 연내 처리도 예상했던 반도체특별법 등 산업경쟁력 강화 방안이 모두 멈춰 섰다. 반도체특별법은 여야가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제외 여부를 놓고 이견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달 막판 협상을 벌여 연내 법안 통과도 기대가 큰 상황이었다. 하지만 탄핵 정국에 들어서면서 여야의 치열한 대립으로 협상의 여지가 사라졌다는 관측이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투표 참여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핌DB] |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제대로 추진이 되던 반도체특별법이 이번 사태로 거의 중단되면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메가 클러스터 조성, 해외 소부장 기업들의 유치 등 국내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려고 했던 부분들이 멈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국 기업들이 투자에 신중해질 수 있는 영향은 있겠지만, 아직까지 판매나 수출 부분들의 지표를 보면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어 이 부분에 까지 영향을 미칠 만한 사건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트럼프 2기 대응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반도체 보조금, 중국 반도체 수출금지 등 대응에 집중해야 인력들이 (사태와 관련된)다른 쪽으로 전환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기업들을 개별 노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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