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뉴스핌] 남정훈 기자 =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지만 리유일 내고향여자축구단 감독의 표정과 말투는 끝까지 담담했다. 남북 맞대결이라는 특수한 분위기 속에서 결승 진출을 이뤄냈음에도 감정 표현은 크지 않았다.
리유일 감독이 이끄는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은 20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5-2026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준결승전에서 수원FC 위민을 2-1로 꺾고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내고향은 후반 초반 선제골을 허용하며 흔들렸지만, 세트피스 상황에서 최금옥의 동점 헤더가 터졌고 이어 주장 김경영이 극적인 역전 헤더 골을 성공시키며 승부를 뒤집었다. 경기 막판에는 지소연의 페널티킥 실축까지 나오며 내고향이 한 골 차 리드를 끝까지 지켜냈다.
이날 승리로 내고향은 북한 여자축구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AWCL 결승 무대에 올랐다. 결승 상대는 앞서 멜버른 시티(호주)를 3-1로 꺾고 올라온 도쿄 베르디 벨레자(일본)다. 두 팀은 오는 23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인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우승 트로피를 놓고 단판 승부를 치른다.
2024-2025시즌 정식 출범한 AWCL은 아시아 여자 클럽 최강팀을 가리는 대회다. 우승 상금은 100만 달러(약 15억원), 준우승 상금은 50만 달러(약 7억5000만원)에 달한다. 결승 진출만으로도 내고향은 적지 않은 성과를 확보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 참석한 리유일 감독은 "모든 선수들이 비가 많이 오고 상대 경기장에서 하는 조건에서도 높은 정신력을 발휘했다"라며 "팀 전술을 살리기 위해 경기를 잘 운영한 점이 좋았다"라고 승리 소감을 밝혔다.
이어 "첫 경기는 항상 어렵다. 전술적으로 공격과 방어 모두 문제점도 많았다"라며 "남은 기간 훈련을 강화해 결승전에서는 더 훌륭한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역전 결승골의 주인공 김경영 역시 침착한 태도였다. 김경영은 "힘든 경기였다"라며 "하지만 선수들이 승리를 위해 하나가 되어 끝까지 열심히 달렸기 때문에 오늘 성과를 만들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날 경기는 단순한 클럽 대항전을 넘어 남북 여자축구 맞대결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수원종합운동장에는 통일부 지원을 받은 200여 개 민간단체 중심의 공동응원단 약 3000명이 자리했다.
하지만 공동응원이라는 이름과 달리 현장 분위기는 사실상 내고향 쪽에 더 가까웠다. 북한 선수단이 입장할 때부터 큰 환호가 터졌고, 내고향의 공격 장면과 득점 상황에서는 일방적인 응원이 이어졌다. 반면 홈팀인 수원FC 위민의 선제골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차분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경기 후 수원FC 위민 박길영 감독이 "우리는 대한민국 축구팀 수원FC 위민이다. 경기 내내 속상하고 마음이 좀 그랬다"라고 밝힌 이유이기도 했다.
반면 리유일 감독은 공동 응원 분위기에 대해 비교적 담담하게 반응했다. 그는 "경기가 대단히 격렬해서 감독으로서 경기에만 집중했다. 응원은 크게 의식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다만 "느낀 것은 이곳 주민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다는 점"이라며 "감사하게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내고향은 이날 경기 초반 수원FC 위민의 거센 공세에 적잖이 흔들렸다. 전반에만 두 차례 골대를 맞았고, 중원 싸움에서도 밀리는 장면이 많았다. 수원FC 위민은 지소연을 중심으로 한 패스 플레이와 강한 압박으로 경기 흐름을 장악했다.
전반 21분 하루히의 다이빙 헤더가 골대를 강타했고, 전반 30분에는 밀레니냐의 오른발 슈팅마저 골대를 맞고 나왔다. 내고향은 전반 슈팅 수에서도 크게 밀리며 어려운 흐름 속에 경기를 이어갔다.
결국 후반 4분 내고향 수비진이 공 처리 과정에서 머뭇거린 틈을 하루히가 놓치지 않으면서 선제 실점까지 허용했다.
그러나 이후 내고향은 빠르게 분위기를 바꿨다. 후반 10분 리유정의 프리킥을 최금옥이 머리로 돌려놓으며 동점을 만들었고, 후반 22분에는 혼전 상황에서 높게 뜬 공을 김경영이 몸을 날려 헤더로 연결하며 역전골을 터뜨렸다.
리유일 감독은 경기 후 수원FC 위민에 대한 평가도 남겼다. 그는 "4강에 오른 팀은 누구든 우승할 수 있는 강한 팀"이라며 "수원FC 위민 선수들도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팀은 아직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부족하다"라며 "이번 대회를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하는 좋은 발판이 됐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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