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은지 기자] 일본이 추가 엔화 약세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주변국들의 우려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일본의 주요 인사들이 환율의 급격한 하락세에 제동을 거는듯한 발언을 쏟아냈지만 이것이 엔화 약세의 추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21일 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 정책 결정자들이 엔화의 추가적인 약세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정책 결정자들은 엔화가 달러화 대비 20% 이상 급락한 것에 대해 "우려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최근의 엔화 하락세를 두고 "시장이 결정한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데 신문은 주목했다.
이는 지난주 아마리 아키라 경제재정담당상에 이어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등 일본의 주요 고위 인사들이 현재의 환율 수준에 만족한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쏟아낸 데 뒤이어 나온 것이다.
아마리 아키라 경제재정담당상은 "엔화가 추가로 하락할 경우 위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아마리의 발언에 이어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역시 "엔화의 과도한 강세를 조정하고자 하는 정부의 노력이 좋은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신문이 접촉한 일본 정부 관리들은 두 장관의 이와 같은 발언이 일본정부가 엔화가 현재 수준에서 안정되기를 바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애써 강조했다고.
또다른 관리 역시 두 장관의 발언이 "시장 내 광범위한 추세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일단 일본 내에서는 엔화 약세를 반기는 움직임이 많다. 닛케이주가지수가 지난 5개월간 50% 급등한 것이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다.
주변국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날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엔화 약세 정책이 주변국에게 공정하지 않으며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는 데이비드 리 칭화대 경제학과 교수의 기고문을 실었다.
리 교수는 디플레이션 타개를 목표로 고안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통화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신호는 아직까지 감지되지 않고 있다면서, 세계는 지금 단지 엔화의 급격한 하락세만을 목도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이래 엔화는 달러화 대비 25%나 절하됐다. 중국 위안화나 한국 원화와 대비해서는 절하 폭이 더 크다.
일본의 주요 교역국의 피해를 바탕으로 하는 이러한 종류의 경제 회복은 정당하지 않다고 리 교수는 강조했다. 지난달 한국의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북한의 핵실험 위협보다 엔저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리 교수는 특히 중국이 사실상 아베노믹스의 충격 흡수자 노릇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3년 동안 중국의 무역 수지 흑자는 약 3000억 달러에서 2000억 달러까지 줄어들었다. 그러는 동안 달러화 대비 명목 위안화 환율은 2010년 7월 이후 약 20% 가량 절상됐다. 이 기간 중국의 인플레이션은 미국보다 2%가량 높았다. 한마디로 실제 환율은 더 빨리 절상됐다는 얘기다.
위안화가 빠르게 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엔화까지 급격하게 하락세를 보이며 중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급속하게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인 것.
리 교수는 화폐 평가절하를 바탕으로한 회복은 지속될 수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치경제적인 이유다.
일본을 포함해 각국 중앙은행들이 경쟁적인 완화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중국, 대만 등이 환율 절상이라는 문제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엔화 가치 하락은 이들의 상처에 소금을 들이 붓는 격이라는 것.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국수주의적인 성격에 대한 반감을 고려해 보면 이들 나라에서 아베노믹스에 대항하는 강력한 경제정책을 내놓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리 교수는 경고했다. 엔화 약세 계속된다면 한국과 중국은 자국 화폐의 절상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다.
일부 일본 수출업체들과 무역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그는 예상했다.
리 교수는 일본 정부가 경제의 펀더멘털적인 가치에 역점을 둬야한다고 충고했다. 국내 경제활동 진작을 통한 자산가치 향상을 도모하라는 것이다.
그는 주요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확대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일본 수출업체들의 실적이 급격한 개선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도 일본 기업들이 자본지출을 늘리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기업들이 환율 하락의 지속가능성을 믿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리 교수는 일본 정부가 세번째 화살로 내세운 규제 개혁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면서, 노동시장 자율화, 경쟁력 제고, 투자확대 등을 중점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뉴스핌 Newspim] 이은지 기자 (sopresciou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