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정탁윤 기자] "한때 공무원들이 '최근 5년치' 스트레스에 시달린 적이 있어요. 국회에서 툭하면 최근 5년치 자료를 제출하라고 했기 때문이죠. 5년치 자료 챙기려면 다른 업무는 거의 못한다고 봐야죠. 최근엔 '최근 3년치'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업무 낭비죠. 어느 의원은 뜬금없이 지역 예산관련 수 백건의 자료를 한꺼번에 요청하기도 해요. 공무원노조가 성명서도 내고 기사화도 돼서 크게 문제된 적도 있지요."
정부부처에서 국회를 담당했던 한 공무원의 하소연이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원은 법적으로 행정부에 각종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자료요구권은 국회법, 국회에서의 증언감정등에 관한 법, 국회예산정책처법, 국회입법조사처법, 국세기본법 등에 규정돼 있다.
법으로 보장한 이 자료요구권이 때로는 칼이 된다. 국회의원이 행정부 공무원들을 '길들이기' 위해 또는 해당 부처에 민원을 넣기 위해 이를 활용하는 경우다. 자료요구권을 가장 잘 휘두를 수 있는 곳이 바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특위)다.
20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말 그대로 정부의 예산과 결산을 다룬다. 국회의원들은 예결특위 위원이 되려고 원내 지도부에 음으로 양으로 로비를 벌이기도 한다.
▲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사진=뉴시스> |
"예결위원이 되면 전 정부부처에 자료요구권을 갖고, 질의를 할 수 있어 각 지역 예산을 챙기는데 수월합니다. 특히 기재위원이 아니면 기재부 예산실을 접촉하기 어려운데 예결위원이 되면 가능하고, 막힌 예산관련 문제를 뚫을 수도 있습니다."
국회 한 관계자는 의원들이 예결위원이 되려고 하는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특히 올해는 내년에 총선이 있기 때문에 지역예산을 하나라도 더 확보해야해 의원들간 경쟁이 치열하다"고 귀띔했다. 자료요구권이라는 칼을 갖고, 예산과 민원을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회 다른 관계자는 "사소한 예로 지역구 현안이나 각종 민원을 해결할 때 일반 의원이 정부부처에 전화하는 것과 예결위원이 하는 것은 다르다"며 "예결위원은 각 정부부처 담당자들을 국회로 불러 각종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사정을 잘 아는 기획재정부 예산실 공무원들은 예결특위 의원들에게 예산을 잘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알려주는 특혜를 베풀기도 한다.
국회의 16개 상임위원회 위원의 임기는 2년이다. 국회의원 임기 4년중 전후반기로 나눠 상임위 활동을 한다. 반면 예결특위 위원의 임기는 1년이다. 정부가 국회에 예산을 제출할 때 한시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의원들의 경쟁이 치열한 것도 이유다.
예결특위 위원의 수는 50명이다. 각 교섭단체소속 의원수와 비례해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전문성과 지역, 선수(選數)등을 고려해 뽑는다. 300명의 국회의원중 50명안에 들기 위해선 6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보통 국회의원 4년 임기중 한 번 이상은 예결위원을 하지만 한 번도 못 하는 경우도 있다.
예결위원 가운데서도 '꽃'은 따로 있다. 정부의 예산안을 직접적으로 손질할 수 있는 예산안조정소위원회(옛 계수조정소위원회) 위원이다. 이들은 해마다 연말에 이른바 '쪽지예산', '카톡예산' 등 예산 관련 민원을 피하기 위해 여의도 호텔 등 은밀한 곳에서 예산심사를 하기도 한다.
한 의원실 보좌관은 "사실 일반 예결위원들은 정부 제출 예산을 깎을 만큼의 권한이 없기 때문에 별로 힘(?)이 없다"며 "그러나 10여명의 계수조정소위 위원은 직접 예산을 수정할 권한이 있어 다르다"라고 귀띔했다.
그는 "50명의 예결위원중 10여명의 계수조정소위 위원은 정책적 전문성 보다는 지역 안배를 고려한다"며 "16개 시도별로 한 명씩 배정해서 그 지역 예산을 책임지고 챙기라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정탁윤 기자 (tac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