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중국 경기 둔화와 달러 강세, 상품시장 약세 흐름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신흥시장 통화들이 가파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중국 경기 둔화 우려, 유가를 중심으로 한 원자재 가격 하락에다 예상을 밑돈 미국의 고용 지표 발표에도 달러가 강세를 이어가자 이머징 통화들이 맥없이 무너졌다.
링깃(주황선), 헤알(파란선), 루블(분홍선) 달러대비 환율 한달 흐름(각 통화가치와 반대) <출처=블룸버그> |
7일 나집 라작 현 총리의 부정부패 스캔들로 정치 혼란까지 더해진 말레이시아에서는 현지 통화인 링깃화 가치가 달러 대비 3.924링깃까지 밀리며 17년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지난 한 주 동안 링깃은 2.7%가 빠졌고, 6월 이후로는 7.1%가 하락한 셈이다.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 애널리스트들은 "정치적 리스크가 고조되고 경기 펀더멘털까지 악화되고 있어 링깃화 약세는 계속될 것 같다"며 "유가나 상품가격도 약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소속 학 빈 추아도 링깃의 추가 하락에 베팅하며 "시장이 올해와 내년 정책금리 인하 가능성은 반영하지 않은 채 성장 리스크에 지나치게 안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링깃화의 자유 낙하에 말레이시아의 외환보유액도 빠르게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2013년 5월 1414억달러로 정점을 찍었던 외환보유액은 1000억달러 밑으로 내려와 5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7일자 이코노미스트(Economist) 최신호는 아시아 통화가 1998년 외환위기 이후로 이렇게 급격한 약세를 보인 적이 없다면서, "특히 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 루피아와화 말레이시아 링깃화가 주목된다"고 전했다.
4년 전 8500루피아 정도이던 달러/루피아 환율은 최근 1만4000루피아까지 치솟았다. 같은 기간 달러/링깃은 3링깃에서 4링깃까지 상승했다. 이들 두 통화는 최근 17년래 최저치로 추락하면서 아시아 통화가치 하락세를 주도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어 "원자재가격 하락, 중국 경기 둔화 그리고 미국 금리인상 전망 등이 결합되면서 2015년은 신흥시장 통화 비극의 해가 되고 있다"며 상황이 거의 일반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라질과 러시아도 경기침체에 들어서면서 헤알화와 루블화가 추락하고 있고, 경기 둔화와 막대한 경상적자에다 정치적 불안정까지 겹친 터키의 리라화 역시 급락하고 있다. 칠레와 콜롬비아, 멕시칸 페소도 예외가 아닌 상황"이란 지적이다.
정부의 재정난이 악화되고 있는 브라질 헤알화는 지난 6일 달러 대비 3.56헤알까지 밀리며 12년래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이번 주에만 2.2%가 빠졌다. 러시아 루블화도 달러 대비 63.94루블까지 하락해 한 주 동안 2.2%가 내렸다.
터키는 국가신용등급이 '정크' 수준으로 밀릴 위기에 처했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무디스가 터키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제시한 것을 지적하며 정크 우려를 제기했다. 지난 1월 스탠다드앤푸어스(S&P)가 10년 만에 처음으로 러시아 등급을 정크 수준으로 내리고 브라질 등급도 위기에 처한 가운데 터키도 그 뒤를 이을 것이란 전망이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기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