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그간 익히 알려진 여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관련 악재에도 불구하고 랠리 지속에 베팅했던 투자자들이 트럼프 취임과 동시에 비관론으로 빠르게 돌아서는 모습이다.
22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작년 대선 이후 뉴욕증시가 여전히 상위권에 머물러 있지만 투자자들은 현금을 늘리고 변동성 확대 헤지에 나서는 등 방어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블룸버그통신> |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AML) 서베이에 따르면 글로벌 펀드매니저들은 이달 들어 현금 비중을 5.1%로 지난 12월의 4.8%보다 더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금 비중 10년 평균인 4.5%를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미국의 무역전쟁 가능성이나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 우려가 현금 비중 확대의 배경으로 확인됐다.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분위기는 더 차갑게 식고 있다. 금융분석업체 S파트너스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최대 상장지수펀드(ETF)인 SPDR S&P500 ETF에 대한 매도 포지션은 329억달러로 직전주의 308억달러에서 확대됐다.
시장에서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VIX는 여전히 수년래 최저치 부근이긴 하지만 VIX의 향후 변동성을 예측하는 VVIX는 2006년 이후 최고치 부근까지 치솟았다.
◆ 막 오른 '불확실성 시대'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이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본격 대두되는 시기에 진입한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이 시장 주요 변수가 됐던 시기에서 이제는 정치 쪽으로 포커스가 옮겨갔다는 설명이다.
티 로우 프라이스그룹 자산배분대표 세바스찬 페이지는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인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정책이나 관점에 예측 불가능성이 상당하다”며 트럼프의 트위터 활동이 그 한 예이며 이 모든 것이 정치 리스크를 높인다고 주장했다.
블랙록 포트폴리오매니저 마이클 프레드릭도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과는 상당히 다른 정책을 펼칠 텐데 이는 주식 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의 주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투자자들이 시장에서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이 아니라 초반의 축제 분위기가 가라앉고 평정심을 되찾는 과정일 뿐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트럼프 정권이 본격 막을 올렸으니 정책 과정과 효과를 일단 지켜보자는 신중론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새 정권이 들어섰을 때 투자자들의 경계감이 커지는 것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비스포크 인베스트먼트그룹이 1928년 이후 데이터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고 난 뒤 한 달 동안에는 S&P500지수가 평균 0.7% 정도 빠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퇴임하고 공화당 출신이 취임하면 낙폭은 2.6%로 더 컸다.
◆ 다시 뜨는 금.. 달러화는 약세
<사진=한국거래소> |
매체는 경계감 확산에 블랙록이나 티 로우 프라이스와 같은 자산운용사들은 커버드콜과 같은 방어적인 투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커버드콜은 주식을 매수하는 동시에 콜옵션(특정시기에 특정 가격으로 자산을 살 수 있는 권리)을 매도하는 전략으로 주가 하락 위험을 부분적으로 방어한다.
투자 신중론과 더불어 금 시장도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금융전문지 배런스(Barron’s)는 대선 이후 금 가격이 고꾸라졌지만 정치 리스크와 불안이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대체하면서 금 시장이 다시 반등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화요일 금 가격은 11월 17일 이후 최고치까지 올랐고 주말에는 금 선물 2월물 가격이 온스당 1204.90달러로 한 주 동안 0.7%가 상승했다. 이로써 금 가격은 4주 연속 상승세를 탔다. SPDR 골드트러스트 ETF도 올 들어 5%가 오른 상태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주 금 시장으로 13억달러의 자금이 유입되며 10주 만에 첫 자금 유입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유입액 기준으로도 5개월래 최대 주간 유입이 기록됐다.
트럼프 대통령 입에서 “달러가 지나치게 강하다”는 발언이 나온 점도 달러 가치를 짓누르며 금 값에는 보탬이 됐다.
일부 투자자들의 경우 연방준비제도가 올해 예고했던 만큼 금리 인상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치적 불확실성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주장하고 있다.
TD증권 상품리서치 대표 바트 멜렉은 미국 성장 전망을 둘러싼 회의론도 올해 금리 인상 속도를 더디게 할 수 있다며 “연준은 통화정책에 상당히 신중한 접근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랠리를 즐긴 미국 달러화 역시 '아메리카 퍼스트' 취임 연설 이후 약세가 두드러지고 있ㅎ다. 23일 아시아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는 일본 엔화 대비로 1% 가량 약세를 보이는 한편, 10개 주요국 통화 대비로 모두 약세를 보였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시드니 특파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