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승동 기자] “의류회사 디자이너는 같은 상품이라도 체형에 따라 디자인을 조금씩 달리합니다. 더 멋있고 편하게 하는 것이죠. 보험사에서는 계리사가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리사는 삶을 디자인하죠.”
임성기 한국보험계리사회 이사는 '계리사'라는 낯선 직업을 더 어렵게 설명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이 직업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danger, hazard, risk 등 영어 단어는 우리 말로 모두 ‘위험’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의미는 조금씩 다르다. danger는 위험 그 자체를 의미한다. 혜성 충돌이나 자연 재해 등과 같은 통제하거나 관리할 수 없는 위험을 말한다.
hazard는 위험 발생을 촉진하는 조건이나 요인을 뜻한다. 가능성을 예상할수는 있지만 통제가 쉽지 않은 영역이다.
risk는 예상 가능하며, 통제도 가능한 위험이다. 운전을 하다 사고가 나거나 암이나 심장마비 등 질병에 걸릴 수 있는 위험이다. 이런 위험은 교통사고 통계, 가족력에 따른 질병 확률 등을 고려해 보험에 가입하면 최소한 경제적인 측면에선 어느 정도 대비할 수 있다. risk가 계리사가 다루는 위험이다. 통계 분석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거나 대비하도록 하는 역할이 계리사의 몫이다.
임 이사는 “계리사는 통계에서 의미를 찾는 역할을 해요. 보험상품을 개발하고, 개발한 상품의 목표 대비 실제 판매량, 판매된 상품의 보험금 지급 및 자산운용 리스크, 적정자본수준 등을 계량화해 의견을 제시합니다. 상품 기획부터 보험료 책정(Pricing), 회사 재무관리까지 모든 숫자를 분석하죠.”라고 설명했다.
계리사는 수학 및 통계학적 분석 등 능력을 필요로 한다. 수학이나 통계학 전공자가 대다수다. 우리나라에서 계리사 자격증 보유자는 1150여명(3월 말 기준)에 불과하다.이 중 83%가 보험사(생명보험사 539명, 손해보험사 412명)에 소속돼 있다. 때문에 정식명칭도 ‘보험계리사’다.
임성기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 보험계리사 <김학선 기자 yooksa@> |
◆ "통계분석가에서 미래학자로"
미국 보험계리사협회인 SOA는 계리사에 대해 ‘Part super-hero, Part fortune-teller, Part trusted advisor’라고 정의한다. 이를 의역하자면 ‘미래 예측 전문가’다. 임 이사도 이 말에 동의한다. “지금까지 계리사들은 과거 통계를 분석하는 역할이 더 컸습니다. 이제는 통계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더 중요시 되고 있습니다.”
한 대형보험사가 요실금 수술시 5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을 1988년에 내놓자 약 200만명이 가입했다. 갱년기 여성의 말 못할 사정을 정확히 파악해 히트를 친 것. 그런데 2000년 초반, 피하조직에 인조테이프를 삽입하는 방법으로 간단하게 요실금 수술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에 2002년 2만5000명에 불과했던 요실금 수술자는 2009년에 약 13만명으로 급증했다. 이 보험을 판매한 보험사는 대규모 보험금을 지급해야했다. 과거 통계만 분석해 상품을 개발한 탓이다.
“의료기술뿐 아니라 ICT기술까지 급격히 발전하고 있죠. 과거 통계 분석만으로는 미래 통계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결국 통계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해야죠. 계리사에게 또 하나의 능력이 필요해진 셈입니다.”
◆ 회사의 자산운용에도 투입
임 이사는 “자산운용에도 계리사의 역할이 커지고 있어요"라며 "저금리 기조로 통계를 통한 정량적분석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험사는 고객을 돈(보험료)을 잠시 맡아 운용하다 돌려주는(보험금) 곳이다. 금리가 높았던 시절에는 자산운용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저금리로 인해 확 바뀌었다. 자산운용과 운용리스크 관리를 위해서도 통계를 분석하는 계리사의 역할이 필요해진 것이다.
임 이사는 다시 강조했다. “보험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통계입니다. 계리사는 보험사는 물론 보험가입자의 인생까지 디자인하는 것이죠."
[뉴스핌 Newspim] 김승동 기자 (k8709489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