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지현 기자] 은행·증권·보험·카드 등 53개 금융사는 지난 12일 공동으로 취업 박람회를 열었다. 이날 '금융권 청년 신규채용 확대를 위한 협약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신규채용을 늘리고 일자리 창출에 힘쓰겠다는 것이 협약서의 골자다.
이 협약서에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문구가 포함됐다가 협약식 전에 삭제됐다. 정부 정책인 블라인드 채용을 민간 기업에까지 강제할 수는 없다는 점이 고려됐다는 설명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15일 "이날 협약서에는 원래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면서 "하지만 민간 기업에까지 강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논란이 있어 협약식 전에 삭제된 걸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문구 대신 '특정 연령, 특정 학교 등에 쏠림 현상이 없도록 차별 없는 채용을 확대하고 지역 인재 채용도 확대해 나간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 금융권 수장들이 13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금융권 공동 채용박람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
블라인드 채용은 지원자의 성별, 나이, 학교 등 기본적인 정보를 가린 상태에서 순전히 직무 능력만으로 채용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소위 '스펙'이 아닌 능력을 평가해 채용의 형평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블라인드 채용이 정부 정책으로 추진되면서 금융분야도 공기업을 중심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할 예정이다.
민간 금융사들은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당국의 정책 추진 방식에 대해서는 볼멘소리를 한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취업박람회에 참여했던 금융사들은 사실상 채용 확대와 블라인드 채용을 약속한 것과 다름 없다"면서 "사실 금융사들은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스펙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지원자들을 평가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름의 방법이 있는데, 지원자의 정보를 모두 가리고 채용을 하는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정부 정책 이라는 이유로 너무 밀어붙이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더군다나 정부가 제시한 블라인드 채용 자체도 지원자의 정보를 어디까지 가려야 할지 그 기준이 명확치 않다. 이 때문에 블라인드 채용을 약속한 금융사들의 채용 평가 방식도 제각각이다.
일각에서는 블라인드 채용을 섣불리 시행했다가는 오히려 지역인재 채용 확대 정책과 배치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역인재채용 목표제를 실시하는 일부 기관에서는 서류나 필기 전형에서 지역 인재를 배려해 가점을 주는 제도가 있다"면서 "만약 블라인드 채용으로 이런 정보를 볼 수 없다면 오히려 지역 인재가 배려받기 어려운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취업준비생들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취업박람회에 참여했던 한 취업준비생은 "사실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는 알겠는데, 오히려 그 동안 금융권 취업을 위해 열심히 준비해 온 사람들이 준비해온 것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역차별이 되진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편 정부는 이번 하반기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지역인재 및 여성 채용 확대 등을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아직 구체적인 안은 나오지 않았다. 오는 9월 중 고용노동부에서 로드맵이 나오면 그때 공공기관들과 협의해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권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나 여성 및 장애인 채용 확대와 같은 포용적 금융 실천 방안은 오는 9월 중 고용노동부의 로드맵이 나오면 구체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면서 "아직까지는 내용이 명확히 나오지 않아 금융기관들과도 얘기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지현 기자 (jh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