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워싱턴=뉴스핌 김사헌 기자] 뉴욕 맨해튼 거리는 사람 혼을 쏙 빼는 힘을 가졌다. 귀를 찢는 트럭 경적과 경찰 소방차 사이렌, 지하에서 뿜어나오는 수증기, 주춤하며 주변을 살피랴 치면 훠이 밀고 달려드는 사람 행렬. 안 가본 사람에게 말로 풀기 참 힘들다. 새로운 이야기 전달법(스토리텔링 기법)이 필요한가 보다.
글로벌 유수의 언론사들이 시간과 돈 들여서 왜 이런 어려운 작품을 만드는 건지 궁금했다. 거기에 디지털 미디어의 미래가 있다고 하니 더욱 그랬다. 현장에 가서 미래를 여는 현재진행형 실험실을 엿봤다. 앞서 360도 가상현실 기술을 적용한 독방 체험, 팔루자 전투 현장, 난민촌 현장 영상에 대해 들었다.
뉴지엄(Newseum)에서 베를린 장벽을 소재로 한 VR/AR/MR 컨텐츠를 경험하는 기자 <사진=뉴스핌> |
지난 추석 서울과 지방 언론사 몇 군데서 모인 7명의 기자가 찾은 뉴욕과 워싱턴의 으리번쩍하고 출입도 통제되는 고층빌딩의 세계 유수 언론 본사 편집국. 부럽고 주눅도 들었지만 더욱 놀란 건 무슨 첨단 게임 세계에서나 쓰는 용어와 영상에 대해 얘기한다는 거다. 압도적인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체험, 몰입(immersive) 콘텐츠,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에다 혼합현실(mixed reality, MR) 참여까지. 어려웠다.
새벽부터 인공지능(AI) 작곡과 음성인식, 홀로렌즈 같은 첨보는 부담스러운 것들과 함께 먹은 퍽퍽한 호텔 조식이 귀로 들어가는지 코로 마신 건지 모르다보니 막 푸념이 나왔다. "대체 얘네들 실험 얘길 왜 듣고 있어야 하는 건데..." 연수를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체감하지 못해 끝내 미루던 참관기를 마감에 밀려 쓰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에서야 이들이 왜 이런 어려운 이야기를 풀어놓는지 어렴풋한 이유를 몇 가지 찾았다.
◆ 디지털 미디어 미래는 '현재진행형' 실험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관한 ‘KPF 디플로마-디지털 미디어의 미래’ 교육에 참여한 뉴스핌 기자는 지난 10월1일부터 12일까지 뉴욕 맨해튼의 뉴욕타임스(Newyork Times)와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 AP통신과 허핑턴포스트 라이엇(Huffington Post_Ryot), 유튜브 스튜디오(Youtube Studio)를 거쳐 워싱턴D.C.의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와 뉴지엄(Newsium)을 차례로 방문했다. 온라인뉴스협회(ONA)가 주최하는 연례 컨퍼런스 'ONA 17'에서는 3000여명의 전 세계 기자들과 함께 언론의 미래에 대해 탐구했고,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지역방송사 KQED, 쿼츠(Quartz) 지사, 서부 탐사저널리즘 중심인 CIR(The Center for Investigative Reporting)까지 방문, 그들의 새로운 기회와 도전에 대해 경청했다.
이 과정에서 짬짬이 디지털 미디어의 미래를 열고 있는 신생 기술업체들과 미디어네트워크 회사, 미디어스타트웝 액셀러레이터 등 실로 다양한 곳을 방문하고 체험했다. 지금 세어보니 비행기와 기차 등 이동시간을 뺀 7일 동안 고스란히 아침 점심 저녁 간담회를 포함해 총 27개의 공식 일정을 소화했다. 미국 일본 브라질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온 글로벌 언론인 20명이 함께 했다. 바벨탑 언어장벽까지 겹쳐 몹시 힘들었지만, 서울 편집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긴장을 놓기 힘들 정도로 몰입이 되는 새로운 된 경험이었다.
대체 글로벌 최고 언론사들이 왜 생경한 VR 스토리텔링,비주얼 저널리즘, 데이터 시각화, 입체 몰입 저널리즘, 가상/증강현실 뉴스 만들기에 그토록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을까. 뒤늦은 정리 속에 답을 찾아 봤다.
2017년 10월2일 뉴욕타임스 본사에서 VR 실험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기자들 <사진=뉴스핌 김사헌 기자> |
지난달 2일 뉴욕 본사에서 만난 마셀르 홉킨스(Marcelle Hopkins) 뉴욕타임스(NYT) 몰입플랫폼 스토리텔링 담당 부이사는 "2015년 어린이가 전쟁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VR로 제작하면서 팀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뉴욕타임스 뉴스룸은 실험 단계이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고 했다.
지금 NYT는 한 달에 한 편의 VR 스토리를 만들고, 하루에 한 개의 '데일리360' VR을 만든다. 현재까지 약 400편을 만들었는데 기자와 작가 사진작가 비디오그래픽 담당자 등 제작인력들이 이렇게 직접 만들면서 배우고 있단다. 이렇게 '맨 땅에 헤딩하면서(heading on the ground)' 얻은 결론은 "전쟁과 자연재해와 관련된 스토리텔링이 VR에 가장 적합하다"는 정도였다.
허리케인이 휩쓸고 지나가는 장면, 피해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상된 집과 거리를 보여주는 것은 말로 하는 것보다 큰 충격과 감동을 줄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원월드트레이드센터(One World Trade Center)와 같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장소에서 잡아낸 시야(View)가 매우 성공적인 반응을 얻어냈다고 전했다.
홉킨스 씨는 NYT 뉴스룸에서는 분석 도구를 이용해서 누가 VR을 보는지, 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계속 확인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뉴스앱과 유튜브 등을 통한 시청자가 있으며, 주로 남성들이 많이 본다는 것도 귀띔했다.
그 다음 찾아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본사에서 만난 VR/AR 담당자는 무지막지만 VR 장비를 들고 아프리카 콩고에 가서 고릴라와 함께 하는 순간을 제작한 '매혹적인' 경험을 소개했다. 금융 경제 매체인 WSJ 기자에게는 그야말로 실험 그 자체일 수밖에 없지 싶었다. 조애너 스턴(Joanna Stern) 퍼스널 테크놀로지 칼럼니스트는 자신이 이렇게 비디오 부서를 맡게 된 경험과 함께 "넓은 사막에서 자동차 뒤에 자전거를 달고 고속으로 달리는 것을 찍기도 했지만, VR헤드셋이 없으면 시청자가 제대로 된 경험을 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고 실험의 교훈을 털어놓았다.
AR 영상을 시연 중인 월스트리트저널(WSJ) 팀 <사진=뉴스핌 김사헌 기자> |
현장에서는 WSJ 모바일앱에서 볼 수 있는 AR 콘텐츠가 소개됐는데, 캐시니 우주선의 우주탐험과 증권시장 현황을 입체로 확인할 수 있는 3D 지도(Map)가 압도적인 경험치를 제공했다. 저런 것은 우리도 해봐야겠다 생각했지만, 제대로 지원하는 헤드셋이 없이는 AR 비디오 자체를 볼 수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헤드셋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라고 스턴 팀장은 말했다. 지금 시판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AR 헤드셋인 '홀로렌즈'는 대당 400만원이 넘는다. HTC의 바이브 정도가 절충안이지만 저렴한만큼 한계가 있다.
스턴 기자는 다만 "시청자가 직접 참여하고 선택할 수 있는 AR 비디오는 시장 데이터 등 학습이나 설명이 필요한 스토리텔링에서는 압도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 AP "다이내믹 스토리텔링 가능한 몰입 3D 영상"
AP통신은 좀더 고차원의 성과를 보였다. 프란세스코 마르코니(Francesco Marconi) 인터랙티브 에디터는 3차원 입체로 가상현실을 찍을 수 있는 '매터포트(Matterport)' 2-3D 카메라로 찍었다는 "The Suite Life" 영상을 보여주었는데, '바로 이거야' 무릅을 탁치게 했다.
AP통신이 제작한 '더스위트라이프(The Suite Life)' 3D VR/AR 영상(이 사진을 누르면 해당 영상이 시연되는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사진=AP통신 관련 페이지> |
하루 숙박료가 6000만원에 이르지만 최소 3박부터 예약 가능한 포시즌호텔 스위트룸과 싱가포르항공의 평균 1800만원짜리 스위트 좌석이 웹 화면에서 입체 가상현실로 쉽게 구현이 됐다. 고해상도로 어떤 공간이든 입체 스캔해서 이를 직접 안으로 들어가 경험할 수 있도록 재구성할 수 있었다.
이런 '볼류매트릭(volumetric)' 캡쳐 혹은 스캐닝 기술을 통해 이 같은 특급 시설을 어디서든 역동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경지까지 오른 것이 감탄을 자아냈다. 모바일 기기나 웹사이트, 특정앱 등 어떤 것이든 이 같은 입체 비디오를 볼 수 있게 한 것으로, 단선적인 스토리를 역동적인 흐름으로 풀어내는 것이 가능했다.
AP통신에선 또 다른 성과도 엿보았다. 직접 과학자와의 좌담회에 독자가 참여하거나 뉴스에 참여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표시할 수 있게 하는 것에서 나아가 '콩디 나스트(Conde Nast)' 페이스북의 '블라인드 데이트(Blinde Date)' 시리즈와 같은 가상현실의 참여 가능성이 그것이다. 독자나 시청자가 과거처럼 선형적인 이야기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역동적으로 선택하고 참여하는 스토리텔링의 수용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마르코니 에디터는 "이제는 포토샵을 이용하지 않고 디지털 스캔으로 이미지를 재현하는 보다 다차원적인 이미지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게임 디자이너를 고용해 뉴스를 제작하는 데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몰입 미디어가 언론사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下편으로 이어서)
[뉴욕·워싱턴/뉴스핌 Newspim]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