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백진엽 기자 =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이 불발됐다. 국민연금이 작년 7월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후 처음으로 대주주를 물러나게 한 사례다.
이번 대한항공 주총은 그동안 굳건했던 한국의 총수 체제에서 기관투자자가 위력을 발휘하는 펀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계기가 될 만한 사안이라며 외신들도 주요 사안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단기적인 수익성을 중시하는 펀드의 성격과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해야하는 기업의 입장이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사진=김승현 기자] |
28일 금융권과 재계에서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대기업 총수라도 기업가치를 훼손했을 경우 견제하고 경영권까지 박탈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하나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은 우려스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대한항공 주총을 계기로 국민연금이 앞으로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지분만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인데다, 국민연금의 결정이 다른 기관투자자나 소액주주들의 입장에 방향키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나 기관투자자들은 그동안 국민연금이 대표 기관투자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이런 목소리는 기업 총수나 총수 일가들이 갑질이나 전횡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을 때 더 커졌다. 대한항공 역시 조 회장 일가의 각종 비리 의혹으로 인해 조 회장 재선임 실패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국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 그리고 소액주주들의 힘이 강해지면 기업 총수들도 기업을 통한 사익추구 등 전횡을 하기 어려워 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한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국민연금의 주주권은 국민의 위임을 받아 소유하고 있는 권리”라며 “시장경제 원리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일 뿐 기업 경영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긍정적인 기대와 다른 우려도 크다. 일단 국민연금의 성격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국민연금 기금위원회 구성상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기금위의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고, 당연직 위원 모두 정부 부처 차관이다. 즉 정부의 기업 정책에 따라 국민연금이 기업의 집사가 아닌 정부의 집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정부 산하 연구기관의 추천을 받은 인물 등 정권에 입맛에 맞는 사람을 임명할 수 있다"며 "정권의 이해관계에 휘둘릴 수 있는 지배구조상 약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에 투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익률을 높이기 위함이다. 투자를 통해 수익을 얻어가는 것이 그들의 최우선 과제다. 이러다 보면 기업의 장기 성장을 보고 큰 그림을 그리는 총수들과 충돌도 있을 수 있다. 당장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투자를 해야 한다는 총수와 지금의 수익이 중요하다는 기관투자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배상근 전국경제연연합 전무는 "주주들의 이익과 주주가치를 감안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야 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논란을 이유로 연임 반대 결정을 내려 우려스럽다"고 대한항공 사안에 대해 평가한 후 "우리 기업들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투자를 할 수 있도록 기업경영권이 더 이상 흔들리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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