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이규하 기자 = # 내 집 마련에 성공한 A씨는 부푼 꿈을 안고 새 아파트로 입주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집안 인테리어의 하자를 살피던 중 주방가구가 훼손되고, 바닥재·도배 등의 심각한 오염상태를 발견했다. 알고 보니 A씨 집이 아파트 평형별 저층의 한 세대를 지정해 미리 보여주는 ‘샘플하우스’로 운영됐던 것. 화가 난 A씨는 아파트 건설사 측에 주방가구, 마루 및 도배 등의 전면교체를 요구하면서 재시공 기간 동안 이주 불편을 겪어야했다.
# 새 아파트로 입주한 B씨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아파트 내부가 새집 같지 않고 때로 얼룩진 데다, 주방 인테리어에는 사람들의 지문이 잔뜩 묻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더욱이 기타 마감재들도 엉성해 보수에 들어갔지만 꺼림칙한 기분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아파트 건설사들이 평형별 저층의 한 세대를 지정해 미리 보여주는 인테리어 집인 ‘샘플하우스’를 입주예정자의 동의 없이 운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대부분은 아파트 샘플세대를 지정할 경우 입주예정자의 동의를 받지 않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부당 약관을 규정해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림산업, 대우건설, 쌍용건설, IS동서, GS건설, 태영건설, 포스코건설, 한라, 한양, 호반건설 등 10개 아파트 건설사의 분양계약서상 불공정약관조항을 시정한다고 29일 밝혔다.
샘플세대는 아파트 내장 마감공사(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품질관리와 하자예방을 위해 평형별 저층의 한 세대를 지정, 미리 만들어 보여주는 집을 말한다. 일명 ‘Mock up 세대’라고도 불린다.
공정거래위원회 [뉴스핌 DB] |
앞서 공정위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8년 시공능력평가액 상위 30개 건설사에 대한 불공정약관여부를 점검한 바 있다. 아파트 건설사가 입주예정자(수분양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샘플세대를 지정했다는 피해 입주자들의 민원이 제기되면서 문제 소지가 있는 10개 건설사에 대한 약관 조사에 들어갔다.
나머지 20개 건설사들은 문제의 약관이 없었다.
10개 건설사들은 공사 중 품질관리를 위해 샘플세대로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입주예정자의 동의를 받지 않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해왔다.
하지만 공정위의 판단은 달랐다. 해당 약관조항은 입주예정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샘플세대를 지정했다는 점을 꼬집었다. 아울러 피해가 발생한 경우 보수 등 사후관리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입주예정자에게는 부당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공정위 시정 내용에는 입주예정자의 동의를 받아 샘플세대를 지정하고, 피해가 발생할 경우 보수하는 내용을 두도록 했다.
예컨대 ‘일부세대는 수분양자의 동의를 얻어 샘플하우스로 사용될 수 있다’, ‘Mock up 세대의 운영으로 인해 발생한 마감재의 파손, 훼손에 대해서는 준공 전 보수 또는 재시공해 인도하기로 한다’ 등의 조항을 뒀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해당 입주자에 대해서는 주방가구, 마루 및 도배를 전면 교체했고 기타 마감재도 보수했다. 재시공 기간 동안의 이주비도 지급했다”며 “시정 약관을 잘 준수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태휘 공정위 약관심사과장은 “10개 건설사의 아파트 분양계약서를 점검해 샘플세대를 지정하면서 고객의 동의를 받지 않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약관법 위반으로 판단했다”며 “10개 건설사는 약관심사 과정에서 불공정 조항을 자진시정했다. 향후 아파트 분양계약을 체결할 때 시정된 약관을 사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공정위는 10개 건설사 외에도 상위 30개 이하 건설사가 샘플세대 관련 불공정약관을 사용할 경우 자진시정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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