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월가의 투기 세력들이 유가 하락 포지션을 대폭 늘린 한편 상승 베팅을 크게 축소했다.
주요국 경제 지표 둔화가 지속되는 데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휴전을 둘러싼 회의론이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원유 배럴[사진=로이터 뉴스핌] |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20년 전세계 원유 수요 전망치를 낮춰 잡는 등 유가 하락 압박 요인이 연이어 불거지는 모습이다.
14일(현지시각)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와 ICE 선물거래소에 따르면 헤지펀드를 포함한 투기세력이 지난 8일 기준 한 주 사이 9500만배럴에 해당하는 물량의 매도 포지션을 취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3주간 투기 세력의 원유 매도 물량은 2억600만배럴에 달했다. 머니매니저들의 매수 포지션은 4억3700만배럴로 후퇴, 지난 4월 9억1100만배럴에서 반토막 이상 줄어든 동시에 1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른바 구조적 롱 포지션을 제외할 경우 실상 머니매니저들의 순매도 포지션이 순매수에 비해 5300만배럴 높은 상황이다.
지난 1월 이후 유가 향방에 대한 월가의 전망이 가장 비관적이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물론이고 미국산 디젤과 유럽산 휘발유, 미국산 휘발유 등 주요 종목에 대해 월가가 일제히 ‘팔자’에 무게를 두고 있어 시장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와 관련, 로이터는 투자자들의 원유 시장 베팅은 미중 무역 마찰뿐 아니라 최근 주요국의 경제 지표 둔화, 기업 이익을 둘러싼 우울한 전망까지 곳곳에서 불거지는 적신호와 같은 맥락이라고 풀이했다.
수출 경기에 커다란 흠집을 입은 독일 경제가 침체 위기를 맞았고, 미국 역시 제조업 경기가 10년래 최저 수준으로 악화됐다. 여기에 홍콩 과격 시위로 인한 충격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내년 지구촌 경제를 어둡게 한다.
IEA의 원유 수요 전망 하향 조정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11일 보고서에서 IEA는 2019년과 2020년 원유 수요 증가 폭을 각각 하루 100만배럴과 129만배럴로 제시, 당초 예상보다 10만배럴씩 떨어뜨렸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원유 수입이 최근 5개월 연속 감소한 것으로 확인, 이 같은 전망에 설득력을 제공했다.
필립 퓨처스는 투자 보고서를 내고 “글로벌 경제의 성장 모멘텀이 크게 꺾였다”며 “이는 트레이더들의 유가 하락 베팅을 부추기는 결정적인 변수”라고 설명했다.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이란과 사우디 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지정학적 리스크에 기댄 유가 상승 모멘텀이 경제 펀더멘털 측면에서 나타난 악재에 밀리는 형국이라고 주장했다.
내년 유가 전망도 흐리다. 최근 블룸버그는 석유 업계 고위 경영자들이 WTI의 가격이 내년 말까지 배럴당 50달러 내외에서 갇힐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비톨의 러셀 하디 최고경영자는 오일 앤드 머니 컨퍼런스에서 “무역 전쟁의 해법을 찾기 전까지 유가는 하락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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