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허고운 기자 =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방한 기간 북한과의 '판문점 접촉'이 불발된 이후 북미 간 긴장 수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거론하며 무력도발 가능성을 시사한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도 "모든 옵션을 검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에서는 지난 7일과 13일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용 로켓엔진 연소시험으로 추정되는 '중대 시험'을 한 북한이 조만간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찰스 브라운 미 태평양 공군사령관 [미 공군 홈페이지 캡쳐] |
◆ "北 장거리 미사일, 시기 문제일 뿐"
지난 3일 리태성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부상이 '연말 시한'을 재차 거론하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 있다"고 언급했다. 과거 미국과의 협상이 풀리지 않던 시기 북한의 선택은 대부분 무력도발이었다.
찰스 브라운 미국 태평양공군사령관은 17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국방담당 기자 대상 행사에서 북한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무엇이겠냐는 질문에 "장거리 탄도미사일이 일종의 선물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시점이) 크리스마스 전날이냐, 당일이냐, 신년 이후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답했다.
브라운 사령관의 언급은 365일 실시간으로 북한을 감시하고 있는 미 정보당국의 분석을 반영한 것일 가능성이 커 주목된다. 다만 그는 "다양한 가능성이 있을 수 있고 당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북한 전문가들 역시 북한의 무력도발은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북한이 당장 비핵화 협상 판을 아예 깰 수 있는 ICBM 발사를 하진 않겠지만 '저강도 도발'은 이르면 연내 분명히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미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연말 시한'을 언급한 만큼 뭔가 보여주는 액션이 있을 것"이라며 "북한은 ICBM으로 바로 가기보다는 서서히 압박하며 궁극적으로는 ICBM 도발로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 "北 단거리미사일 발사에 '괜찮다'던 트럼프도 기조 변화"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크리스마스 전 노동당 전원회의를 열어 새로운 길의 결단을 보여주고 그에 대한 행동을 보여주기 위해 기존에 발사했던 미사일을 쏠 수 있다"며 "일본을 압박하기 위해 노동 미사일을 발사할 수도 있고 미국과 국제사회의 반응을 보며 중거리 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ICBM 등 점점 강도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진 경남대 교수도 "북한 입장에서는 제재가 오래 지속되는 현 상황을 가만 둘 수 없어 맞대응으로 무력시위를 꺼내지 않을 수 없는 상태인 것 같다"며 "정확한 시기를 예측할 순 없으나 기존 북한의 태도를 볼 때 크리스마스에 미국에게 선물이라고 비아냥거리며 도발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ICBM 발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한 약속을 완전히 깨는 것으로 북한은 인공위성이 실린 우주발사체 시험을 할 것"이라며 "크리스마스 도발은 작은 수위의 도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 피츠패트릭 전 국무부 비확산 담당 부차관보도 "(크리스마스 선물은)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가 될 것"이라며 "ICBM 혹은 핵실험은 '마지막 카드'로 남겨놓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무력도발에 따른 미국의 대응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수위까지 올라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브라운 사령관은 "2017년에 했던 것이 많이 있어 (도발이 계속될 경우) 우리는 꽤 빨리 먼지를 털어내고 이용 준비를 할 수 있다"며 북미 대치기였던 2017년 당시 진행한 군사 옵션을 다시 꺼내들 가능성도 내비쳤다. 미국은 당시 제한적 선제공격 훈련, 북한 지도부 폭격 훈련,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등 강력한 압박책을 사용했다.
미국 내에서 비교적 북한에 유화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8일 "적대적으로 행동하면 사실상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데 이어 16일(현지시간) "무언가 진행 중이면 나는 실망할 것이고 우리는 이를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고강도 도발이 현실화될 경우 모종의 조치를 취할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서울=뉴스핌] 허고운 기자 = 북한 관영매체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일대 혁명전적지들을 둘러봤다고 4일 보도했다. [노동신문 캡쳐] 2019.12.04 heogo@newspim.com |
◆ 美, 외교적 해법 강조하지만 효과는 미지수
브라운 사령관은 "우리 임무는 외교적 노력을 지원하는 데 있다"며 미국이 여전히 군사 옵션보다는 대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업적으로 꼽아온 트럼프 행정부로서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강 대 강 대치는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다.
비건 대표 역시 한국에서는 북한과 접촉하는 데 실패하고 일본으로 향했으나 19~20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해 대북 대화를 위한 협력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그는 북한의 연락만 오면 언제 어디서든 만나겠다는 입장으로 중국에서 북한 측과 만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비건 대표의 방중이 북한의 도발을 막는 성과로 이어지긴 어렵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양무진 교수는 "비건 대표의 방한 메시지는 생존권과 발전권에 대한 셈법 전환의 구체적 징표를 가져오라는 북한 입장에선 진전된 것이 없다"며 "2017년 이전과 달리 미중은 갈등적 패권경쟁을 하고 있고 북중관계가 상당히 좋아 대북 제재 압박에 중국이 공조할 가능성도 낮다"고 평가했다.
비건 대표가 방중 일정을 마칠 때까지 북한과 특별한 의견교환을 하지 못할 경우 올해 북미대화는 사실상 종료돼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지금의 흐름이 이어진다면 내년은 군사적 긴장감을 별개로 생각해도 현재의 북미 비핵화 협상이 있기 전인 2017년보다 불안정한 한해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박정진 교수는 "2017년에는 북한이 괌을 타격하겠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으나 결국 극적인 협상으로 가는 듯한 장면이 연출됐다"며 "이번에는 이미 협상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한 경험이 있어 영영 새로운 협상 카드가 사라지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용어설명
*대륙간탄도미사일(ICBM·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 대륙간탄도미사일은 핵탄두를 장착하고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까지 공격이 가능한 탄도미사일이다. 사정거리 5500㎞ 이상의 탄도미사일로, 대기권 밖을 비행한 후 핵탄두로 적의 전략목표를 공격한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 : 잠수함에 탑재돼 어떤 수역에서나 자유롭게 잠항하면서 발사되므로, 고정기지에서 발사되거나 폭격기에 의해서 운반되는 탄도탄에 비해서 은밀성이 보장된다. 또한 공격목표 가까이에 근접해서 발사할 수 있다. 사정거리가 비교적 짧아서 적의 요격망을 돌파하는 데 유리할 뿐만 아니라 발사기지의 이동성으로 인해 적의 전략공격 시에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많은 전략무기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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