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지난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촉발한 '한보사태' 후 해외로 도피했던 정한근(55) 전 한보그룹 부회장이 1심에서 징역 7년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윤종섭 부장판사)는 1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재산국외도피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 씨에게 징역 7년과 추징금 401억 3193만8000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한보그룹 부도 이후 정 씨가 운영하던 동아시아가스(EAGC)의 담보 수행을 피하기 위해 재산을 국외로 도피했다는 공소사실 모두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저지른 횡령 범행의 피해가 회복됐다고 볼 사정이 증명된 바가 없고, 피고인의 범행 동기는 결국 경영권 유지 및 사익 추구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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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피고인이 국외 도피를 하는 바람에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을 만날 수 없게 됐고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보이기는 한다"면서도 "이는 피고인이 자초한 것이다. 도피 과정에서 동원된 수법이 좋지 않은 데다 도피 중 또 다시 재산국외도피 및 횡령 범행을 저지른 점을 보면 이를 유리한 양형 사유로 삼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재산국외도피 범행 중 일부 액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IMF사태 이후 외국환관리법이 폐지되고 새롭게 외국환거래법이 제정되는 등 규제가 크게 완화된 점, IMF사태가 한보사태와 무관하지는 않지만 모든 책임을 돌릴 수는 없는 점 등을 참작해 검찰의 구형량보다는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정 씨가 운영하던 동아시아가스(EAGC)가 1996년 러시아 회사 루시아석유(RP)로부터 주식 27.5%를 취득했다, 한보가 부도난 이듬해 20%를 매각한 혐의로 수사를 벌였다. 당시 검찰은 구속영장을 발부받았으나 정 씨가 이미 해외도피한 후라 소재를 찾지 못했고, 2008년 9월 공소시효 만료 직전 정 씨를 기소했다.
대검찰청 국제협력단은 오랜 추적 끝에 지난해 6월 21일 정 씨를 파나마에서 검거해 도피 21년 만에 국내 송환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정 씨가 나머지 7.1% 주식 398만주 상당도 매각해 차명계좌로 빼돌린 혐의를 포착해 추가 기소했다. 정 씨는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씨는 지난달 열린 결심공판에서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회사의 중책을 맡았으나, 미처 업무를 익힐 시간없이 그룹 전체 부도라는 황망한 사태와 선친과 형님이 동시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며 "돌이켜보면 순간순간이 모두 고통이었고,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한편 정 씨의 아버지 정태수 전 회장은 2018년 12월 1일 에콰도르에서 신부전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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