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연순 기자 = 평소 여직원에게 음란물을 보여주고 성적 농담을 일삼은 40대 직장 상사에 대해 대법원이 하급심을 뒤집고 다시 판단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기소된 고모씨(40)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서부지법 형사항소부로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은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검찰에 따르면 고씨는 서울 마포구의 콘서트 영상제작 업체 과장으로 근무하면서 신입사원으로 직장 상사 지시를 쉽게 거부하기 어려운 여직원 A씨(26)에게 평소 컴퓨터로 음란물을 보여주거나 성적인 농담을 일삼았다.
고씨는 A씨에게 "볼이 발그레한게 화장이 마음에 든다. 오늘 왜 이렇게 촉촉하냐"고 말하거나,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를 넣은 상태로 피해자를 향해 팔을 뻗어 성행위를 암시하는 등의 행동을 하기도 했다.
고씨는 A씨의 머리카락 끝을 손가락으로 비비며 "여기를 만져도 느낌이 오냐"라고 묻기도 했다. 이에 A씨는 "하지 말아라", "불쾌하다"고 말했지만 A씨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A씨에게 퇴근 직전 업무 지시를 해 야근을 시키거나 다른 사람의 일을 떠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1심은 고씨가 A씨를 상대로 장난을 치기도 하는 등 직장 내 위계질서가 강하지 않다는 점, 사무실 구조가 개방형이라는 점 등을 들어 A씨의 행동이 '위력에 의한 추행'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고씨는 A씨보다 2개월 일찍 입사한 정도여서 업무를 지시하는 위치이기는 했으나 업무 수행 등에 있어 A씨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의 정도는 큰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라며 "B씨는 자신도 성적 농담이나 장난으로 대응하고 팀장에게 성희롱을 알리기도 했는바, 이런 태도에 비춰 심리적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신체 접촉 정도 등에 비춰 A씨의 성적 자유 의사가 제압된 상태에서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가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도 원심을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고씨가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하급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은 "피해자의 성적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 입장에서도 도덕적 비난을 넘어 추행행위라고 평가할 만하다"며 "나아가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추행행위의 행태나 당시 경위 비춰 위력으로 추행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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