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민경하 기자 = # 코로나19로 공연이 취소된 뮤지컬 스태프 A씨는 정부와 서울시가 내놓은 예술인 지원사업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예술인 활동증명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술인 등록을 위해 예술인복지재단을 찾은 A씨는 공연 안내책자에 이름이 없다는 이유로 등록을 거부당했다.
# 프리랜서 디자이너 B씨도 예술인 등록을 거부당했다. 함께 협업한 기관·단체의 입금내역이 개인으로 표기돼 예술활동으로 인한 경제적 증명이 안됐기 때문이다. 대부분 구두계약으로 진행해 서면계약서가 없어 예술인 등록을 포기했다.
정부의 하반기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 제도 추진을 두고 우려섞인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예술인 증명서를 발급받지 못했거나 근로계약 형태가 불분명해 가입요건에 포함되지 않는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고용보험 도입에 앞서 임금과 근로시간 기준을 구체화한 표준계약서 활성화가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관련 내용을 감안해 시행령으로 보완하겠다는 답을 내놓았다.
◆ "계약서 써본적도 없는데...고용보험 가능할까요?"
1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12월부터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를 도입한다. 이번 제도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사각지대에 놓인 예술인 고용안전망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앞으로 프리랜서 예술인들은 고용보험이 적용되며 실업급여와 출산전후급여 등을 수급할 수 있다.
다만 적용 대상과 수급 요건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고용보험법 일부개정안 상 적용 대상은 '예술인 복지법'에 따른 예술활동증명서를 발급받거나 대통령령으로 정한 사람 중 문화예술용역계약(1개월 미만 계약 포함)을 체결한 사람으로 규정돼 있다.
[서울=뉴스핌] 이한결 기자 =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코튼홀에서 열린 연극 '환상동화' 프레스콜에서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우 강하늘, 송광일, 박규원, 한소빈, 윤문선, 백동현, 최정헌, 장지후. 2019.12.26 alwaysame@newspim.com (본 기사와 관련 없음) |
우선 예술활동증명서를 받는 것이 어렵다. 공연 스태프·단역배우 등은 예술활동을 증명할 서류가 마땅치 않아 등록을 포기하는 일이 다반사다.
A씨는 "스태프명단이 적힌 안내책자를 3개 이상 가져오라 하는데 어린이 공연의 경우 안내책자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공연 제작사에서 온 극소수 스태프를 제외하면 상황은 거의 같다"고 말했다.
실직 직전 2년동안 9개월 이상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 수급요건도 맞추기가 어렵다. 보통 공연 제작시 소요되는 2~3개월의 연습기간을 근로기간에 포함하는 제작사는 극히 드물다. 여러 제작사의 공연을 돌며 근로기간 9개월을 맞춘다고 해도 보험료를 납부하는 사업주가 계속 바뀐다는 단점이 생긴다.
대부분의 계약이 여전히 구두계약으로 진행된다는 점도 문제다. B씨는 "회사와 직접 계약하는 경우도 있지만 소개를 받아 일을 진행할 때도 많다"며 "계약서가 없다고 신고하려고 해도 겨우 들어온 일이 없어진다고 생각돼 선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애매모호한 범위 산정...그래서 누가 예술인입니까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일 브리핑에서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 될 예술인은 약 7만명 정도"라고 말했다.
정부가 7만명으로 추산하는 근거는 뭘까. 정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018년 실시한 '예술인 실태조사'를 근거로 이번 정책의 초안을 만들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내 전체 예술인 중 실제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비율을 곱한 뒤 소득이 미미한 예술인을 제외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6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2020.06.11 photo@newspim.com |
조사에 따르면 국내 예술인 등록이 돼있는 전체 예술인은 17만8000명이다. 이 중 실제로 근로계약을 체결해 근무하는 비율은 약 42%로 둘을 곱했을 경우 약 7만4000여 명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약 5만명에서 많게는 7만4000명까지 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하지만 관련 데이터는 지난 2018년 조사 결과에 근거하고 있어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반영되지 않는 등 정확성이 크게 떨어진다. 예술활동증명서를 받지 못한 예술인,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하는 예술인의 숫자는 여전히 많은 편이다. 고용보험 가입 대상자가 될 수 있는 예술인의 범위와 그에 따른 지출 규모를 명확하게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고용노동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협의체를 구성해 오는 가을중으로 시행령을 만드는데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적용 대상에 최대한 많은 예술인을 포함하기 위해 예술인 활동증명서가 없더라도 50~70만원 수준의 일정소득 이상을 버는 예술인을 별도로 파악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예술계에서는 구두계약을 관행이라고 하지만 제도권 내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서면계약이 돼야한다"며 "고용보험 도입에 앞서 서면계약 활성화라던지 여러 선결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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