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노해철 기자 = "지금은 미군 장교숙소5단지라고 하지만 100년 전으로 돌아가면 이 일대는 조선시대 얼음을 보관하던 서빙고가 있던 곳입니다. 이 땅의 역사는 서빙고를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일본군 주둔지, 해방 직후 미군기지로 이어졌습니다."
서울지하철 경의중앙선 서빙고역을 마주한 용산미군기지의 장교숙소5단지는 약 116년동안 우리 국민에게는 '금단의 땅'이었다. 지난 1904년 일제는 이 땅을 강제 수용해 일제강점기 내내 군용지로 사용했고,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기부터는 미군이 주둔하면서 일반인 출입이 금지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일 방문한 장교숙소5단지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마무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곳은 다음 달 1일부터 총 303만㎡ 용산공원부지 중에서는 처음으로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된다.
[서울=뉴스핌] 노해철 기자 = 8월 1일부터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되는 서울 용산구 용산미군기지 장교숙소5단지 내에 위치한 야외갤러리 '새록새록'의 모습. 이곳에는 용산기지 역사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사진=노해철 기자] 2020.07.20 sun90@newspim.com |
◆ 5개동 미장교숙소→전시공간 '탈바꿈'...용산기지 한눈에
이번에 개방된 장교숙소5단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한미군 장교들이 가족들과 사용하던 시설이다. 약 5만㎡ 부지에는 과거 129가구가 거주하던 임대주택 16개동과 관리시설 2개동 등 총 18개동 건물이 자리했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1월 이 땅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한 뒤 국민 개방을 위해 18개동 건물 중 5개동을 전시공간과 카페, 오픈하우스 등으로 리모델링을 마쳤다.
출입구와 안내공간을 지나면 '새록새록'이라는 이름의 야외 갤러리가 시민들을 맞이한다. 이곳에는 과거 한강에서 얼음을 채빙하는 모습과 옛 일본군사령부 일대 전경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은 "사진들은 과거 역사성과 장소를 이해하기 위한 매개체로서 전시된 것"이라며 "과거 역사와 현재 공원의 모습이 어우러지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잔디밭을 따라 걸어가면 미군이 사용하던 주거공간을 그대로 연출한 공간도 마련돼 있다. '오손도손'이라는 오픈하우스는 실제 미군 장교들과 그 가족들과 함께 거주하던 곳이었다. 현재는 당시 살던 가족들의 생활상과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그들이 용산기지에 거주하면서 겪은 경험을 풀어낸 이야기들과 사진, 영상 등이 제공된다.
[서울=뉴스핌] 노해철 기자 = 서울 용산구 '용산공원 전시공간'에 마련된 용산미군기지 조형도의 모습. [사진=노해철 기자] 2020.07.20 sun90@newspim.com |
'용산공원 전시공간'에 들어서면 용산미군기지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모형이 마련돼 있다. 용산미군기지는 북쪽의 '메인포스트'와 남쪽의 '사우스포스트'로 나뉜다. 메인포스트에는 주한미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 등이 있고, 사우스포스트에는 장교숙소와 국립중앙박물관, 용산가족공원 등이 위치한다.
김 연구실장은 "용산미군기지 전체 그림을 보면서 용산공원조성에 대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303만㎡ 규모 부지를 500분의 1로 줄여 전시했다"며 "과거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들어설 때 토지를 강제수용 당했던 조선인들의 한이 그대로 녹아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리모델링을 마친 5개동 건물을 제외한 13개동도 내년 상반기 중 개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아이디어 공모 등 의견수렴을 거쳐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유홍준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 민간공동위원장은 "남은 13개동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많은 구상을 하고 있다"며 "유스호스텔로 활용해 지방에서 오는 관광객, 학생, 배낭 오는 외국 청소년에게 개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노해철 기자 = 용산미군기지 장교숙소5단지에서 허물어진 실제 벽돌 담장의 모습. 우리의 지난 역사와 앞으로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사진=노해철 기자] 2020.07.20 sun90@newspim.com |
◆ "용산공원 완공, 10년 더 걸릴 듯"...임대주택 놓고 이견도
그러나 용산미군기지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는 작업을 마치기 위해선 앞으로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교통부는 당초 완공 목표 시점을 2027년으로 제시했지만, 더 많은 시일이 필요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용산미군기지 중 일부를 미군이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보니 공원조성도 늦어지고 있다"며 "최소 2030년은 돼야 완성된 공원을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미군으로부터 반환을 마친 용산미군기지 내 부지는 총 3곳이다. 장교숙소5단지와 4단지, 7단지가 여기에 해당된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당시 용산미군기지의 '국가공원화' 계획 발표, 2007년 '용산공원조성특별법' 제정 후 10년이 훨씬 지났지만, 부지반환은 지지부진했다.
부지반환이 이뤄지려면 해당 부지에 대한 환경조사와 정화 작업을 위한 비용을 누가, 얼마나 부담할 지에 대해 한국과 미국 정부의 협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양국이 이와 관련해 이견을 보이면서 반환 절차는 지연돼왔다.
[서울=뉴스핌] 노해철 기자 = 용산미군기지 부지에 들어설 예정인 용산공원은 최초 국가공원으로 총 303만㎡ 규모로 조성된다. [사진=노해철 기자] 2020.07.20 sun90@newspim.com |
용산미군기지 부지 활용 방안에 대한 국민 의견수렴 작업도 더 필요하다. 이 부지에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0일 자신의 SNS에 "실수요자와 집값 안정을 위한 공급이 필요하다면 미래의 유산인 그린벨트를 건드리는 대신 서울 지역 내 공공기관 보유부지를 공급 대상으로 선정해야 한다"며 "LH 소유의 용산미군기지, 서울시 소유인 강남구 삼성동 일대 서울의료원 부지, 태릉과 성남 등에 있는 군 골프장 부지 등 정주 여건이 좋은 부지들이 많다"고 제안했다.
반면 정부는 용산미군기지 내 임대주택 공급은 없다는 입장이다. 유홍준 위원장은 "시민들에게는 자연녹지에 대한 그리움이 오래전부터 쌓여왔다"며 "국토부의 기본지침은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하는 것이고, 새로 건물을 짓지 않는다는 원칙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이 동의했다"며 임대주택 건설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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