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야금(冶金)'은 돌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기술입니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금융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첫단부터 끝단까지 주목받는 건 몸집이 큰 사안뿐입니다. 야금 기술자가 돌에서 금과 은을 추출하듯 뉴스의 홍수에 휩쓸려 잊혀질 수 있는 의미있는 사건·사고를 되짚어보는 [한국금융의 뒷얘기 야금야금] 코너를 종합뉴스통신 뉴스핌이 선보였습니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이후 개선된 건 있는지 등 한국금융의 다사다난한 뒷얘기를 격주 금요일 만나보세요.
[서울=뉴스핌] 박미리 기자 = 올 상반기 지지부진하던 삼성생명, 삼성화재 주가가 무서운 기세로 오르고 있다. 이달 초(3일)에 비해 삼성생명은 52%, 삼성화재는 12% 주가가 올랐을 정도다. 양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팔도록 한 '삼성생명법(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주식 매각 후 이익이 발생하면 배당이 늘어날 수 있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번에는 '삼성생명법'을 추진해온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다수를 차지해 법 통과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 '삼성생명법'이 뭐길래…?
삼성생명법은 보험사가 '시가' 기준으로 자산평가를 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현행 보험업법에서는 보험사가 계열사 주식을 총 자산의 3% 이하로 보유할 수 있게 하는데, 이때 자산평가 기준이 '취득원가'다. 이를 '시가'로 바꾸자는 것이다. 보험사 모두가 대상이지만 기준이 바뀐 후 영향을 받는 곳이 삼성생명, 삼성화재 뿐이어서 '삼성생명법'이라 불리고 있다.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박용진·이용우 의원이 발의한 데 이어, 지난달 29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다뤄진 후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박 의원은 "삼성전자에 위기가 오면 삼성생명이 우리 경제 위기의 슈퍼전파자가 될 수 있다"며 법 개정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삼성생명법 적용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삼성전자 주식을 무조건 팔아야 한다. 수십년 전 취득 시보다 지금 삼성전자 가치가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가치는 취득원가 기준 5000억원대, 1000억원대로 추산된다. 총자산의 0.1~0.2%로 현행 법에선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시가(13일 종가)로 전환하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가치는 29조8288억원, 삼성화재는 5조2126억원이다. 삼성생명은 20조5000억원가량, 삼성화재는 2조6000억원가량을 기준보다 초과 보유했다. 따라서 법이 통과되면 양사는 유예기간인 5년(금융위원회 승인시 7년) 이내 총 23조원 가량의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
◆ 3차례 도전, 이번엔 다르다?
삼성생명법은 이번에 처음 발의된 게 아니다. 19대 국회에서 김기식 전 민주당 의원이 처음 발의했고, 20대 국회에서도 박용진 의원을 비롯해 이종걸 의원 등이 잇따라 유사한 법안을 내놨다. 하지만 특정기업(삼성)을 겨냥한 법이라는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논의에 진전이 없었고 회기가 종료되면서 자동 폐기됐다. 법안은 21대 국회가 개원한 후 또다시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으로선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다.
이는 현행 보험업법이 가지고 있는 모순 때문으로 분석된다. 바로 두 가지다. 은행·증권 등 다른 금융업권에는 시가로 자산운용 규제를 하면서 보험사만 취득원가로 규제하는 점, 이에 보험사가 '총자산의 3%'를 계산할 때 분모인 총자산에 들어가는 보유지분 가치는 시가로 평가하면서 분자인 운용자산에 포함되는 보유지분 가치는 취득원가로 계산하는 점(분모와 분자에 적용되는 주식가격이 다르다). 이용우 의원은 법안을 발의하면서 "보험회사만 예외적으로 취득원가가 기준인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보험업계에선 장기투자를 하는 특성상 취득원가 기준이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연기금도 시가를 반영한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하기에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에는 법안 통과에 우호적인 여건이 조성돼 이전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더불어민주당이 177석으로 3분의2에 가까운 거대 의석을 확보해서다.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온 금융위도 전보다 전향적인 입장을 낸 상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최근 정무위 업무보고에서 "자산을 한 회사에 몰아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보유지분 가치를) 시가로 계산해 그때 그때 위험성을 파악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의원들의 전체적 방향성(법 개정)에 대해서도 공감한다"고 밝힌 것이다.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은 법 개정엔 선을 그은 대신 자발적인 개선을 당부했었다.
삼성생명법이 통과된다면 누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삼성전자 주식을 사느냐가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이 주식이 밖에 나오기보다 '삼성그룹 안'에서 처분될 것으로 보고있다. 그룹 주력사이자 지배구조 상에서도 핵심인 삼성전자 지분을 외부에 내놓기란 쉽지 않아서다. 삼성그룹은 '총수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분구도를 지녔다. 이에 지분 매입에 나설 유력한 주자로 총수일가가 많은 지분을 보유한 삼성물산이 꼽히는 상황이다. 삼성물산은 이재용 부회장이 지분 17.48%로 최대주주이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각각 5.6% 등을 비롯해 특수관계인 지분이 32.94%다.
[ 2년 전에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2018년 삼성전자 보유주식 일부를 매각한 바 있다. 규모만 1조원대.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 계획대로면 두 회사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올라가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을 위반하기 때문이었다. 금산법에선 금융당국 사전 승인없이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가 비금융회사 지분을 10% 넘게 보유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에 삼성전자 지분 매각을 잇따라 압박한지 한달여만의 조치여서 지배구조 개선의 신호탄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삼성생명도 당시 최종구 전 위원장에 "국제회계기준, 신지급여력제도, 금융그룹 통합감독제도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삼성전자 지분 매각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이렇다할 움직임은 없었다. 이를 박용진 의원은 이번 정무위 업무보고에서 질타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삼성생명 등을 만날 때 마다 문제를 지적하고 자발적 개선이 바람직하다고 환기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milpar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