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영태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3일(한국시간) 새벽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언급한 '종전선언'의 핵심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목표로 세운 '출구론'이 아닌 '입구론'이다. 종전선언(declaration of the end of war)이란 전쟁을 종료시켜 상호적대관계를 해소시키고자 하는 교전당사국들의 정치적 선언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세계평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유엔 정신이 가장 절박하게 요구되는 곳이 바로 한반도"라며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보장하고, 나아가 세계질서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 시작은 평화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한반도 '종전선언'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오후(현지시간)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사진=청와대페이스북] 2019.09.25 photo@newspim.com |
그러면서 "특히 올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한반도에 남아있는 비극적 상황을 끝낼 때가 되었다.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은 완전히, 그리고 영구적으로 종식되어야 한다"며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보장하고, 나아가 세계질서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종전선언'을 통해 화해와 번영의 시대로 전진할 수 있도록 유엔과 국제사회도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며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위한 '출구(종결)'가 아니라 '입구(시작)'로 설명했다는 점이다. 즉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한국전쟁 정전협정 이후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 휴전상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일단 종전선언으로 문을 열고('입구론') 북한 비핵화와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최종적인 평화협정을 '출구론'으로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정전협정의 핵심 당사국인 미국과 북한이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동시에 제시할 경우 북핵문제 해결과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핵심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고민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북핵문제가 해결되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통해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기존 답안지를 '선 종전선언 후 평화협정'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대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 김준형 국립외교원장 "한반도 전쟁종식 의미를 담은 '단계적 종전선언'을 제안한 것"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뉴스핌과의 전화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의 연설은 원래 북미 간에 상호불가침이나 종전선언이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우리부터라도 먼저 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데피니션(정의)을 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원장은 "종전선언이 효력을 가지려면 결국 정전협정 당사자인 북미나 남북미, 남북미중이 함께 모여 선언하는 것으로 가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끝났다는 점을 공식화하고 이를 위한 의지를 천명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종전선언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이나 이를 관망하고 있는 북한이 종전선언을 위해 움직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문 대통령도 이를 고려해 종전선언을 당사국들이 모두 모여야 한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한국이 먼저 선언하고 나중에 북한이나 미국, 중국이 이에 참여할 수 있는 '단계적 종전선언'을 제안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종전선언을 제시한 것은 2017년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져 있을 때 그래도 할 수 있다는 화두를 던진 '신베를린선언'과 의미가 비슷하다"며 "결국 신베를린선언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공동참가와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불씨가 됐었다"고 비유했다.
김 원장이 언급한 '신베를린선언'은 2017년 7월 6일 독일을 공식 방문한 문 대통령이 베를린 쾨르버 재단 연설을 통해 발표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등 '한반도의 냉전구조 해체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5대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할 돌파구로 남북 대화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 등 '4대 실천 과제'를 북한에 제안했다.
'신베를린선언'의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5대 대북정책 기조는 △북한 붕괴, 흡수통일, 인위적 통일을 배제한 평화 추구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추구 △남북 합의 법제화 및 종전선언과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남북 철도연결, 남·북·러 가스관 연결 등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정치·군사적 상황과 분리된 비정치적 교류협력 지속 5가지다.
◆ 한반도에 정전협정 대신 종전선언이 필요한 이유
문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선언은 왜 필요할까?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통해 끝났지만 이는 말 그대로 전쟁을 종료시킨 것이 아닌 잠시 멈춘 휴전이기 때문이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 정식명칭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사진=국방홍보원] |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의 정식명칭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당시 정전협정의 주체는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미 육군대장 마크 클라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팽덕회(펑더화이) 3인이다.
따라서 정전협정을 마감한다는 '종전선언'과 그 표현물인 '평화협정'(peace treaty: 전쟁상태의 종결, 평화 회복 및 평화관리를 위한 당사자 간 법적관계 등을 규정한 협정으로, '정전협정 대체를 위한 합의문서'를 지칭할 경우에는 '평화협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의 주체는 기본적으로 미국과 북한, 중국 3자다.
정전협정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반란집단'이자 '괴뢰'인 북한을 대등한 존재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참했으나, 현재는 북미중 3국 모두 남한의 '당사자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정전협정에 남한이 참여할 경우 미국과의 군사동맹 체결이 실패하거나 또는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즉 종전선언이 실질적 효력을 가지려면 한국 외 당사국인 미국과 북한, 중국이 모두 참여해 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문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선언은 유엔이라는 국제무대에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선 북한과 미국, 중국이 모두 참여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여하면서, 일단 한국부터라도 이를 선언하고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선언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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