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펼치다 사실상 실패한 호텔 사업을 대한항공이 정리하면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조 전 부사장에 대한 흔적까지 지우기가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한진가의 경영권 분쟁에서 일단 승기를 잡은 조 회장으로선 부진한 호텔 사업을 정리하는 것과 함께 자신을 향해 총공격한 조 전 부사장의 흔적 마저 깨끗히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2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송현동 부지와 왕산마리나 지분 매각 등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항공 보잉 787-9 여객기 [사진=대한항공] |
대한항공이 호텔사업 대부분을 정리하는 이유는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요구한 자구책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지난 4월 채권단은 1조2000억원의 추가 대출을 결정하며 2조원 규모의 자본 확충을 요구한 바 있다. 이후 대한항공은 유상증자를 통해 1조1000억원을 조달한 데 이어 기내식과 기내면세품 판매사업을 매각해 8000억원 가량의 자금을 추가로 확보했다.
한진칼의 자회사 칼호텔네트워크가 소유한 ▲제주 파라다이스호텔 ▲그랜드하얏트인천 ▲서귀포 칼호텔 ▲제주 칼호텔 등 국내 소유 모든 호텔도 매각 대상에 올랐다. 해외의 경우 미국 하와이의 와이키키리조트 매각을 위해 주관사를 선정하고 매각을 추진 중이다. 대한항공은 호텔사업 중 유일하게 LA 윌셔그랜드센터를 매각 대상에서 제외하고 1조1000억원 규모의 대출을 결정했다.
일각에서는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이 호텔사업을 정리하는 것은 조현아 전 부사장의 입지를 좁히기 위한 포석이란 시각이 많다. 조 전 부사장은 미국 코넬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99년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본부로 입사해 줄곧 그룹 내 호텔사업과 대한항공 기내식사업을 맡아왔다.
대한항공이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2월 이사회에서 송현동 부지 매각을 결의한 것 역시 조 전 부사장의 영향력을 지우기 위한 일환이라는 분석도 제기돼왔다. 조 전 부사장은 7성급 한옥호텔 신축계획을 총괄해왔지만 관련 법 개정이 무산되면서 사실상 사업이 철회됐다.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주주가치라는 명분을 얻는 동시에 조 전 사장이 추진하며 그룹 내 입지를 다져온 호텔사업의 주요 부지를 정리한 셈이다. 조 전 부사장, 반도건설과 연합한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는 3자연합을 결성하기 전인 2018년 한진그룹에 주주가치 제고방안의 일환으로 송현동 부지 매각을 요구한 바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 KCGI, 반도건설 등 3자연합은 올초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조 회장을 향해 '실패한 경영자'라며 공격했으나, 업계는 정작 호텔 사업 부진에 대해 코로나19 발생 전부터 적자 수렁에 빠진 조 전 사장의 실패로 받아들여왔다.
업계 관계자는 "조 전 부사장이 오랫동안 공들인 호텔사업을 정리하는 기회가 된 것"이라며 "조 전 부사장이 담당했던 왕산마리나 지분 매각 역시 돌아올 곳을 없앤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의 호텔사업 중 유일하게 매각대상에서 제외된 LA 윌셔그랜드센터 역시 장기적으로는 정리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앞서 대한항공은 윌셔그랜드센터를 담보로 리파이낸싱(자금재조달)을 추진했지만 부동산 업황 악화로 어려움을 겪자 약 1조1000억원의 대출을 결정했다. 당장 매각이 어려운 만큼 단기 유동성 지원을 통해 급한 불을 끈 뒤 매각에 착수할 것이란 관측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윌셔그랜드센터에 대한 매각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며 "현 시점에서 매각을 하면 제값을 받기 어려워 매각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의 호텔사업은 수년째 해마다 수백억원의 적자를 기록해 '밑 빠진 독에 물붓기'란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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