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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소 잃고 외양간 부순' 사모펀드

기사등록 : 2021-05-25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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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정경환 기자 = '800개에서 200개, 11조에서 3조'. 최근 3년 신규 설정 사모펀드의 개수와 순자산총액 변동폭입니다. 월별 최대치와 최소치의 차이인데 둘 다 반의 반 토막 났습니다.

사모펀드 시장의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2019년 라임, 2020년 옵티머스 사태의 여파입니다.

사기성 짙은 대규모 환매 중단 소식에 온 나라가 떠들썩했습니다. 운용사, 수탁사, 판매사 등에 강도 높은 처벌과 제재가 이어졌습니다. 법인은 물론 대표자 등 주요 임원들도 피해 갈 수 없었지요. 동시에 책임을 무겁게 지우는 쪽으로 제도 개선안도 만들어졌습니다.

네, 이 때문입니다.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이지요. 수탁은행들이 사모펀드를 받아주지 않고, 판매사들도 상품 판매를 꺼리게 됐습니다. 큰 수익도 안 되는데 괜히 떠맡았다가 된서리만 맞았다는 불평이죠.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회사는 물론 임원들까지 처벌을 받으니 더 그렇다. 윗사람들 결재를 받아야 사모펀드를 하든 말든 할텐데 그게 결재가 되겠나. 아예 결재 받을 일을 안 만들려고 하겠지"라고 말합니다.

대개 사모펀드는 자산운용사가 상품을 만들어 은행과 증권사 등 판매사를 통해 이를 시장에 내놓습니다. 이 때 수탁은행이 펀드자산을 보관·관리하고, 환매대금과 이익금을 지급하는 역할을 맡게 되는데 사모펀드를 판매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되는 과정입니다. 즉, 수탁은행이 수탁을 거부하면 사모펀드는 세상에 나올 수 없다는 얘깁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요즘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많이 어렵다고 들었다"며 "수탁 수수료도 얼마 안 되는데 한 번 사고가 나면 이렇게 크게 다치니까 수탁사들이 이제 안 하겠다는 건데, 지금 수수료가 올라가고 있어도 안 하겠다는 거다. 별로 돈도 안 되는데 피곤하기만 하니까"라고 했습니다.

판매사는 더 억울할 수 있겠습니다. 잘못한 것에 비해 처벌이 가장 무겁다고 느끼는 것이지요. 거의 독박을 쓰는 분위기입니다. 판매사가 고객과의 접점에 있기 때문에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것 같습니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 판매사 책임은 제일 적다고 할 수 있는데 오히려 페널티를 전부 판매사한테 줘버렸잖아"라며 "그러니 과하게 줬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다. 책임 비중이 10%도 안 되는데 페널티도 판매사, 고객 돈 물어주는 것도 판매사가 되니 그렇다면 이거(사모펀드) 안 하겠다 이렇게 되는 게 아니겠나. 이러니 고사 지경에 이른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자본시장에서 사모펀드는 고개를 들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처벌 또는 제재를 하지 말라는 것도, 가볍게 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당연히 잘못한 만큼 벌을 받아야 하겠지요. 다만, 돌아갈 곳까지 없애버리는 것은 누구에게도 좋을 것이 없지 않나 싶은 것입니다. 소를 잃고 나서 외양간마저 부셔버린 형국이라면 좀 과할까요. 이미 늦은 건 마찬가지지만 소를 잃고 나서라도 외양간은 다시 쓸 수 있게 해둬야 다시 소를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당연히 운용사 책임이 제일 크다. 만들어진 약관대로, 원칙대로 운용을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안 했잖아. 책임이 제일 크지"라며 "운용사가 먹고 살 게 없어서 먹고 살게 해달라는 것도 있지만, 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운용사 문제가 제일 크니 페널티를 세게 매기면 된다. 위험관리 잘하면 이런 일이 안 벌어진다. 그 위험관리 체계가 지금은 잘 갖춰졌다. 그런데도 선뜻 나서지 못 하는 상황이 된 거고, 우린 우리대로 회사 존립을 걱정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펀드 시장에서 사모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690조 원 가운데 430조, 60%가 넘습니다. 당초 사모펀드는 일부 자산가들에게 허락된 폐쇄적인 시장이었지만, 2011년 헤지펀드 도입 이후 2015년과 2018년 두 차례의 사모펀드 활성화 정책에 따라 문턱이 낮아지면서 급성장했습니다. 모험자본을 활성화하고 투자자들에게는 다양한 투자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였지요. 그런데 라임·옵티머스 사태로 인해 지금은 정확히 그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문턱을 높이고 규제 일변도로 흐르고 있는 것이지요.

한 증권사 관계자는 "사모펀드라는 툴이 자본시장에 존재해야지. 돈이 도는 데 있어 사모 만큼 좋은 툴도 없다. (사모펀드가 안 되면) 채널 하나가 사라지는 거다. 자산가들의 돈을 산업이나 금융 자본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던 건데 그게 안 되면 돈의 경맥이 막히는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내비칩니다.

금투협 관계자는 "(수탁사들이) 상장된 자산들은 그나마 수탁사들이 받아주는데, 한국예탁결제원에 예탁되지 않은 비시장성 자산이나 부동산, 해외물 그리고 100억 이하 정도의 소금액 같은 사모펀드들은 잘 안 받아주기 때문에 굉장히 힘든 상황"이라고 전합니다.

월평균 신규 설정 사모펀드 수가 2018년 544개, 2019년 577개에서 2020년엔 216개로 확 줄어듭니다. 올해 1분기는 월평균 213개입니다. 그나마 최근 기업공개(IPO) 시장 호황으로 한 달에 200개 정도는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릅니다.

금투협은 현재 금융감독원, 예탁원 등과 함께 사모펀드 시장을 다시 살릴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수탁업무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예탁원은 비시장성 자산 투자 지원을 위한 플랫폼을 마련, 다음 달 공식 출시를 앞두고 있구요.

금투협 관계자는 "금감원과 논의해 수탁업무를 보다 명확히 할 수 있는 모범 규준을 만들고 있다. 분명한 매뉴얼이 있으면 아무래도 업무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본다"며 "수탁사들이 예전보다는 좀 더 편리하게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그런 면에서 예탁원에서는 시스템 개선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hoa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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