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마트 자율 포장대에서 사과 1봉지를 훔친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노인에게 절도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당시 피해자와 같은 사과를 구입해 자신의 것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헌재는 청구인 A씨가 절도 혐의로 받은 기소유예 처분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청구 인용 결정했다고 4일 밝혔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의 한 대형마트. 위 기사와 관련 없음. 2021.02.15 pangbin@newspim.com |
A씨는 지난 2019년 10월 경 서울 도봉구 한 마트에서 장을 보던 B씨가 자율 포장대 위에 놓고 온 2.5kg 사과 1봉지를 훔친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는 자신도 같은 사과를 구입했고 자율 포장대에서 식료품을 포장하면서 구입한 사과봉지로 착각해 실수로 가지고 갔을 뿐 절도의 고의나 불법영득의사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은 헌법상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절도죄가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주관적 구성요건으로서의 절도의 고의와 불법영득의사는 그 성질상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해 입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가 사건 당일 마트에서 결제한 신용카드 영수증을 살펴보면 A씨 역시 B씨가 구입한 사과봉지와 같은 가격, 무게의 사과 1봉지를 구입했다"며 "A씨가 노령이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정신과 신체가 불편했던 점도 고려하면 A씨가 식료품을 박스에 포장하면서 순간적으로 자신이 구입한 사과로 착각했을 가능성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수사기록에 편철된 CCTV 영상캡처사진을 살펴봐도 A씨와 B씨가 포장대에서 구입한 식료품을 담고 있는 장면만 있을 뿐 A씨가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둘러본다거나 사과봉지를 유심히 살펴보거나 자신이 구입한 사과와 비교해보는 등 미필적으로라도 절도의 고의를 인정할 사정은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헌재는 "수사 내용만으로는 A씨에 대한 절도의 고의와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은 중대한 수사미진 또는 증거판단의 잘못이 있다"며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으므로 이 사건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기로 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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