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기락 기자 =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쉐보레 판매 부진 등을 이유로 한국지엠 군산공장을 폐쇄하기로 2018년 결정했다. 군산공장 근무자 약 1500명 가운데 1000여명이 희망퇴직 등을 통해 회사를 떠났고, 나머지 일부 근무자는 한국지엠 부평공장 등으로 흩어졌다.
군산공장 근무자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와 정치권에서도 퍠쇄만은 막겠다고 애를 썼으나 냉혹한 현실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1996년 준공한 한국지엠 군산공장은 22년 만에 그렇게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됐다. 이 과정에서 한 희망퇴직자는 극단적 선택을 해 비극을 낳았다.
당시 한국지엠 군산공장 가동률은 수년간 약 20%에 그쳐 자동차 생산 기지로서의 역할을 못했다. 판매 부진과 함께 숱한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내수 판매 및 수출 축소 등 부메랑으로 돌아와 결국 노사 모두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GM은 오랜 기간 동안 한국지엠 상황을 지켜보며 생산 확대 독려와 지시에 이어, 결국 구조조정을 택한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공교롭게도 2년치 임금단체협상을 질질 끌어온 르노삼성자동차와 닮아있다. 르노삼성차 노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임단협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 중 유일하다. 수년간 지속적인 실적 부진에 지난해에는 790억원의 적자를 봤고, 올해도 적자를 벗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김기락 산업1부 차장 |
기업의 노사가 임단협에 합의를 하든, 안 하든 그것은 선택의 문제다. 임단협 과정에서 양측의 이견을 보일 수 있고, 때로는 격론을 펼쳐가며 대립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르노삼성 노사 관계는 양쪽 모두 손을 놓은 듯 하다. 르노삼성차는 이달 초 여름휴가를 보내고 지난 19일 12차 본협상과 25일 13차 본협상을 이어나갔으나 합의점을 못 찾았다. 과연 임단협 타결 의지가 있는지 노조는 물론, 사측에게도 묻고 싶다.
르노삼성차와 한국지엠이 현대자동차와 기아 등 한국 토종 자동차 기업과 구조적으로 다른 점은 해외 자본의 지배력이다. 프랑스 르노그룹은 르노삼성차의 지분 80%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르노삼성차 노사가 갈등을 겪을 때마다 르노의 경영진은 르노삼성차에 경고했다. 경고의 겉모습은 화합이지만, 속내는 한국을 떠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도미닉 시뇨라(Dominique Signora) 르노삼성차 사장은 지난해 르노 본사를 설득해 XM3 수출 물량을 겨우 따왔다. 연간 30만대 규모의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의 가동률을 절반이라도 유지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미 주저앉을 대로 주저앉은 르노삼성차에 XM3 수출만이 살길로 본 것이다.
이에 대해 올초 호세 빈센트 드 로스 모조스(Jose Vicente de Los Mozos) 르노 제조 및 공급 총괄 부회장은 르노삼성차 임직원에게 XM3를 스페인 등 르노의 유럽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이 부산공장 보다 두 배 효율적이라고 하면서도, 부산공장에 생산을 배정했다. 르노에 따르면 르노 그룹 가운데 부산공장의 생산 경쟁력(QCTP) 순위는 2019년 5위에서 지난해 10위로 추락했다.
지난해 르노삼성차 생산량은 11만6000여대로, 최근 5년새 최저치다. 올들어 7월까지도 6만6000여대에 그쳐 전년 동기 대비 12.6%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내수는 무려 45.1% 날아가 국내 소비자들도 르노삼성차에 등을 돌렸다는 시각이 나올 만하다. 단적으로 QM6를 비롯한 내수 판매 전 차종이 모두 마이너스다.
이런 상황에서 르노삼성차의 임단협이 장기화되는 것은 르노가 과거 GM과 같거나, 유사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재촉하는 것으로 해석할 만하다. 또 르노삼성차 지분 20%를 보유한 삼성생명이 지분 매각을 추진해 르노삼성차는 내년부터 사명에서 삼성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르노 인지도가 희미한 르노삼성차로서는 시험대가 아닐 수 없다.
동시에 르노로서도 르노삼성차에 대한 판정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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