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사내 게시판에 직원에 대한 징계 절차 회부 사실을 알리는 공문을 붙여 재판에 넘겨진 인사담당자에게 '공공의 이익'이 있다고 볼 수 없어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2020.12.07 pangbin@newspim.com |
A씨는 지난 2019년 7월 회사에서 인사업무를 담당하면서 직원 B씨에 대한 징계 절차 회부 사실에 관한 공문을 사내 게시판에 붙이도록 관리소장에게 지시해 B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해당 공문에는 '인사위원회 참석요청 건'이라는 제목으로 참석대상자인 B씨의 이름과 인사위원회 소집사유, 목적 등이 기재돼 있었다.
1심은 A씨의 명예훼손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문서 내용은 피해자에 대한 징계절차 회부와 징계사유 존재에 관한 것으로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의 구체성이 있는 사실의 적시가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다른 직원들이 이 사건 문서 게시로 피해자에 대한 징계절차 회부와 징계사유를 알게 된 점 △일반인의 출입이 가능한 관리사무실에 게시된 점 △피고인 스스로 피해자의 업무비협조나 지시거부 등을 억제하고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자에 대한 회사 조치를 알리고자 하는 의도에서 문서를 게시했다고 주장한 점 등을 이유로 공문 내용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A씨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행위였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단지 피해자가 징계절차에 회부됐다는 내용만으로 피해자에게 징계 사유가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게시한 것은 공공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은 그러나 1심과 달리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에 대한 징계 절차 회부 사실은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시키기에 충분한 구체적인 사실"이라면서도 "회사 내부의 원활하고 능률적인 운영의 도모라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징계에 회부됐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사생활에 관한 사항이 아니고 회사 공적인 절차에 해당하는 것이며 공적 관심의 대상이라고 봄이 상당하다"며 "피고인은 회사에서 징계 회부 절차를 담당한 직원으로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한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이같은 원심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대법은 "문서에 적시된 내용이 피해자가 회사에서 근무 중 저지른 비위행위에 관해 징계절차가 개시됐다는 것이어서 공적인 측면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징계절차에 회부된 단계부터 그 과정 전체가 낱낱이 공개돼도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징계혐의 사실은 징계절차를 거친 다음 확정되는 것이므로 징계절차에 회부된 단계에서 그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이를 사회적으로 상당한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회사 운영매뉴얼상 징계회부의 경우 징계혐의자에게만 공문을 보내도록 돼 있어 징계회부 사실 자체는 공지할 만한 일이 아니다"라며 "피해자에 대한 징계절차 회부 사실이 공지됨으로써 '회사의 원활하고 능률적인 운영의 도모'라는 공익이 달성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대법은 "피고인의 행위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판단한 원심 판결에는 명예훼손죄에서의 '공공의 이익'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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