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성수 기자 =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이 구상한 '건물분양 주택'(토지임대부 주택)이 서울 집값 안정에 도움이 줄지 불투명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서울 집값이 안정되려면 주택시장에 영향을 줄 정도로 많은 물량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토지임대부 주택은 공공소유 토지에 짓는 것이기 때문에 애초 땅 규모가 크지 않아서 물량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강남 등 입지 좋은 곳일수록 해당 지차체와 주민들이 주택공급을 원치 않기 때문에 이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도 관건이다.
[서울=뉴스핌] 김성수 기자 = 김헌동 SH공사 사장이 24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SH공사 본사에서 '강남 세곡2지구 분양원가 공개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성수 기자] 2022.02.24 sungsoo@newspim.com |
◆ 김헌동 "건물만 분양해 가격 '다운'…택지 확보 노력할 것"
김헌동 SH공사 사장은 24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SH공사 본사에서 '강남 세곡2지구 분양원가 공개 설명회'를 열고 "강남에 5억원, 강남 외 지역에 3억원짜리 '건물분양 주택'(토지임대부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설명회는 김 사장의 취임 100일을 맞아 개최됐다.
김 사장은 "SH공사가 짓는 아파트 건축비가 25평 기준 1억5000만원 정도로 저렴한데 분양가를 10억원 이상 비싸게 받는 것은 (사업자들에) 과도한 이익"이라며 "소유자들은 아파트 토지를 갖고 있어도 어차피 풀 하나 심을 수 없다. 우리 공사는 건물만 분양해서 분양가를 저렴하게 낮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건물분양 주택(토지임대부 주택)을 어디에 공급할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김 사장은 "서울에 대규모 택지는 적지만 잘 찾아보면 빈 땅이 많다"며 "후보지를 계속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과거 이명박 정부 때 '토지임대부 주택'을 공급해서 서울 집값 안정이 이뤄졌던 적은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자료에 따르면 이명박 전 정부(2008년 12월∼2013년 2월) 당시 서울 아파트 중윗값은 3% 하락했다.
KB주택가격 동향(2008년 12월 자료부터 제공)과 한국은행, 통계청 발표자료를 바탕으로 각 정권 출범 첫 달과 마지막 달의 서울 아파트 중윗값을 비교해 나온 수치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강남 그린벨트를 풀어 이른바 '반값 아파트'로 불린 보금자리주택을 짓는 등 공급을 확대한 결과로 분석된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서울 강남권 그린벨트를 풀어 강남구 세곡동과 내곡동에 2012년까지 보금자리주택 총 32만가구를 공급했다. 위례신도시에도 보금자리주택 2만2000가구를 공급했다. 모두 시세의 절반 수준이다.
◆ 이명박 정부 성공사례 있지만…수만가구 공급할 나대지 부족
하지만 김 사장의 '건물분양 주택'(토지임대부 주택)이 이명박 정부 당시만큼 규모가 클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은 그린벨트 해제를 제외하면 대규모 주택이 들어설 나대지를 확보하기 어렵다. 서울 역세권 등 입지가 좋은 곳에는 나대지가 드물고 각종 업무·상업시설로 구성된 건물이 많다. 이런 땅에 집을 지으려면 기존 임차인들을 내보낸 후 주거시설로 리모델링하거나 새로 지어야 한다.
하지만 개정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임대차 기간 10년을 보장하고 있다. 이 법 10조 1항에 따르면 임대인은 임차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1개월 전 사이에 계약갱신을 요구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한다.
이처럼 주택을 공급할 지역은 한정된 반면 주택 수요는 많다. 특히 서울 강남권은 대기수요가 많기 때문에 대규모 단지가 들어서도 몇달새 물량이 소화된다.
예컨대 지난 2018년 12월 송파구에 약 1만가구 규모의 헬리오시티가 들어섰을 당시 입주 초기에는 송파구 일대 아파트 전셋값이 하락했었다. 하지만 1개월 정도 지난 2019년 1월 말에는 전세가격이 다시 반등했다.
송파 헬리오시티 전경 [사진=HDC현대산업개발] |
특히 지금처럼 입주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공포수요'(패닉 바잉)도 많기 때문에 공급을 늘려도 시장에 충격을 주기가 어렵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2만463가구로 작년(3만1211가구)보다 34.4% 감소한다. 지난 2020년(4만9359가구)에 비하면 절반 이하로 급감한 수치다.
SH공사가 차선책으로 서울 각지에 있는 소규모 토지에 소규모 아파트 단지를 지을 경우, 서울 주택시장에 유의미한 충격을 주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건물분양 아파트 가격이 주변 시세를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서울에 주택시장 안정 효과를 가져올 만큼 많은 물량을 지을 토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또한 (건물만 분양해서) 아무리 싼 값에 주택을 공급해도 인근 시세를 끌어내리기 보다는 인근 시세에 맞춰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건물분양 아파트 가격이 주변 시세에서 토지소유권을 차감한 수준에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토지 확보해도 지자체 설득 '난관'…"주민들 반대 극복해야"
또한 김 사장이 서울에서 대규모 토지를 확보했다 해도 관련 지방자치단체의 동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숙제가 남아있다. 특정 지역에 주택공급이 늘어나면 그 지역 인구밀도가 높아지고 교통 체증, 주차난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주민들은 주택이 늘어나는 것 보다는 해당 지역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시설이 들어서기를 원한다. 고급 인력을 유치할 일자리나 교육시설, 공원, 병원, 대형 마트와 같은 생활편의시설 등이다. 정부가 수차례 주택공급 지역을 선정했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진행이 잘 안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여의도 삼익아파트에 '재건축은 틀어막고 닭장임대 졸속추진, 여의주민 무시하냐'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김은빈 기자] 2021.07.09 kebjun@newspim.com |
예컨대 여의도 주민들은 정부가 8·4대책을 통해 여의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소유 부지에 공공임대주택을 짓겠다는 계획에 대해 집단 반발했다. 해당 부지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1-2번지 일대(면적 8264㎡)다.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옆에 있으며 이전에 학교용지로 지정됐지만 40년간 공터로 남아있었다.
정부는 이곳에 약 300가구를 위한 일자리 연계형 공공임대주택을 건립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부지 인근에 거주하는 여의도 시범아파트와 삼익아파트 주민들은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반대 운동을 벌였다. 공공임대주택 건설이 금융특구라는 여의도의 도시적 특성에 맞지 않는데다, 주민들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여의도 주민협의회 LH 청원 관련 진행자는 "여의도 금융중심 지구단위계획에 따르면 해당 부지는 국제금융중심지에 포함된다"며 "해당 위치에 300가구 임대주택을 건설한다는 계획은 서울시의 기존 계획에 심각하게 배치되는 것은 물론, 여의도를 국제금융도시로 발전시키려는 계획의 방향성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옛 서울의료원 부지도 공공주택 공급을 놓고 서울시와 강남구청이 의견 대립을 보이는 지역이다. 정부는 8·4대책에서 옛 서울의료원 부지 중 북측에 공공주택 3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강남구는 이 일대를 국제교류복합지구로 개발해야 한다며 완강히 반대했다.
이처럼 서울에 남아있는 빈 땅은 주택이 아닌 다른 용도의 건물을 짓기 위한 계획이 잡힌 경우가 많다. 특히 강남, 여의도 등 입지 좋은 토지에는 부가가치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이 적합하다는 의견도 많다. 이에 따라 해당 지역 주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이창무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서울의료원 부지는 서울 대도시권 업무 중심지인데다 잠실운동장, 삼성동 개발의 결절점 역할을 맡고 있다"며 "주거용지로 쓰기보다는 잠실 국제교류복합단지와 어울리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시설을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원은 "서울에 남아있는 빈 땅은 집이 아닌 다른 용도의 건물을 짓는 게 더 효율적인 경우가 있다"며 "서울에 대다수 국·공유지는 이미 어떤 건물이 들어올지 계획이 다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대규모 주택공급이 가능한 땅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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