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신영 기자 = 직업훈련 교사로부터 성추행 사건을 보고받은 시설장이 다른 직원들이 모인 회의 자리에서 '보고받은 적 없다'고 말했더라도 보고한 교사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벌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춘천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고 13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2018년 10월 강원도 동해시의 작업장에서 한 장애인이 인지가 낮은 여성 동료를 성추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작업장의 직업훈련 교사였던 B씨는 시설장 A씨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A씨는 가해 장애인의 부모를 불러 당시 팀장이었던 B씨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주의와 경고를 주고 보호자 확인서에 서명을 받았다.
하지만 A씨는 2019년 4월 작업장 회의실에서 직원 5명이 모인 가운데 B씨가 성추행 사건을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고 받은 적 없는 사실을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태료 처분을 받는 것은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공연히 허위 사실을 적시해 B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A씨에게 벌금 600만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B씨의 진술을 보면 A씨가 가해 장애인 부모와 가진 상담에서 부친이 할 수 있는 성교육 방법을 알려줬다는 등 일관되고 구체적"이라며 "A씨와 상담한 가해 장애인 부모가 서명한 보호자 확인서에도 성희롱 행위가 구체적으로 기재돼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설장인 A씨가 가해 장애인의 문제행동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모르고 (부모와) 상담까지 진행했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회의실에서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것이 충분히 인정된다. 또 직원 5명이 듣고 있는 가운데 허위 사실을 말했으므로 공연성도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2심은 항소를 기각하고 1심 판단을 유지했다. A씨의 발언은 B씨의 업무처리가 미숙해 작업장에 피해를 끼쳤다거나 성추행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해석이 가능해 명예훼손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의 명예훼손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대법은 "A씨가 상급자로부터 과태료 처분 책임을 추궁받자 대답 과정에서 B씨와 관련된 언급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B씨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고의를 가지고 발언을 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책임에 변명을 겸해 단순한 확인 취지의 답변을 소극적으로 하면서 주관적 심경과 감정을 표출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이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주관적 요소로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고의를 가지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데 충분한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는 행위를 해야한다"며 "원심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에는 명예훼손죄의 고의와 사실의 적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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