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은혜 기자 =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가 보험업권의 주요 화두로 올랐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병원에서 진단을 받거나 진료를 본 내역이 자동으로 보험사로 전달돼 실손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현재는 가입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해 보험사가 청구하는 서류를 직접 발급받아야 한다. 수작업으로 진행해야 하는데다,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 소비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높다.
어떤 소비자는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기도 한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보험사의 실손보험금 청구내역 등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3년(2020년~2022년) 실손보험 지급 가능액(37조5700억원) 중 7400억원은 청구 불편으로 인해 지급되지 못했다.
이은혜 금융증권부 기자 |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보험소비자가 경험한 '보험금 신청과정에서 경험한 어려움' 1위는 '보험금 청구를 위한 제출서류 발급(56.8%)', '보험금 청구 및 지급 과정 중 발생한 문제' 1위는 '보완서류 제출 요청(43.6%)'으로 꼽혔다.
실손청구 간소화는 의료계의 반발에 막혀 진행되지 못 하고 있다. 의료계는 ▲보험사를 위해 요양기관에 보험금 청구 서류 등을 전자문서로 전송하도록 강제하는 부당한 규제 및 행정부담 문제 ▲개인정보인 환자진료정보의 유출 개연성이 높은 점 ▲보험사가 환자데이터를 축적해 추후 해당 환자에게 보험 상품을 판매할 때 골라서 가입시키는 역선택 소지가 큰 점 ▲보험사를 위해 공적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의 설립취지와 맞지 않는 업무 위탁 등의 이유를 들어 실손청구 간소화를 반대하고 있다.
풀어서 설명하면 실손청구 간소화는 보험사에게만 이득이라는 뜻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대응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들어 대응 중이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는 의료계가 정부가 비급여 항목을 들여다볼 수 있게 돼 통제를 받게 되는 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고 반박하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문제는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실손청구 간소화에 대한 논의가 심도깊게 이뤄지기는 어렵단 전망이 나온다는 것이다. 5대 시중은행장이 오는 11일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 줄줄이 증인으로 채택된 만큼 이번 국정감사는 은행권의 횡령과 론스타에 대한 책임론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올해 디지털 플랫폼 정부 추진 방향에서 실손청구 전산화를 포함시키고, 금융당국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실손청구 전산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을 하반기 주요 법안 중 하나로 보고한 만큼 올해는 다른 분위기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실손청구 간소화가 국회에서 공회전한 지 어느덧 14년째다.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만큼 국민 대부분이 가입하는 주요 보험상품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디지털화돼있지 않다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보험업계와 의료업계가 밥그릇 싸움을 하는 동안 지치는 건 소비자다. 올해 국정감사는 해묵은 실손청구 간소화 논란과 결별하고, 소비자들을 위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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