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정성훈 기자 = 한국 경제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기던 2%대 성장률이 내년에 깨질 것으로 보인다. 고물가로 인한 실질구매력 저하와 시장금리 상승으로 소비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사태 등 대외변수들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단기간 내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한국 경제는 더욱 암울하다. 정부도 경제 성장의 한계를 인정하고 버티기에 돌입했다.
◆ KDI,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1.8% 전망…수출 증가세 둔화·투자 부진 지속
11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내년 한국의 경제는 수출 증가세 둔화와 투자 부진 지속으로 1.8%의 낮은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성장률 0.8%를 나타낸 이후 가장 부진한 성적표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1%대 성장률 전망의 의미에 대해 "경제성장률만 갖고 경기국면을 판단하는 건 아니지만, 잠재성장률이 대략 2% 내외라면 1.8%는 그보다 하회하는 수준"이라며 "그래서 내년에는 경기둔화 국면이라고 진단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우리 경제는 내수 개선에도 불구하고 대외여건의 악화에 따른 수출 부진으로 성장세가 약해지는 모습이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전선에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특히 수출 효자 종목인 반도체와 중국향 매출 부진이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평택항 컨테이너 부두 항공사진[사진=평택세관] 2022.10.16 krg0404@newspim.com |
올해 무역수지는 1995년 1월∼1997년 5월 이후 25년만에 7개월 연속 적자를 나타냈다. 월별로 살펴보면 4월(-24억7700만달러), 5월(-16억600만달러), 6월(-24억9700만달러), 7월(-50억8900만달러), 8월(-93억9400만달러), 9월(-37억7800만달러), 10월(-66억9600만달러) 등이다.
이달 상황도 녹록지 않다. 이날 관세청이 발표한 이달 1~10일 수출액(통관 기준 잠정치)은 177억500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8% 감소했다. 만약 이달 전체 수출이 감소할 경우 지난달(-5.7%)에 이어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게 된다.
투자 역시 0%대 낮은 증가율에 머무를 전망이다. KDI에 따르면 설비투자는 반도체 경기둔화와 대외 불확실성 증가로 2022년(-3.7%)에 이어 2023년에도 0.7%의 낮은 증가율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또 건설투자는 주택시장 부진과 자금조달 여건 악화로 인해 2022년(-3.0%)에 이어 2023년(0.2%)에도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1년째 이어져 온 고물가 상황은 한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민간소비가 줄면서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KDI는 "민간소비는 코로나19의 영향에서 점차 벗어나며 서비스소비가 회복되겠으나, 고물가로 인한 실질구매력 저하와 시장금리 상승으로 재화소비가 둔화됨에 따라 2022년(4.7%)보다 낮은 3.1%의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KDI 외에 국제 신용평가사, 민간 연구기관들의 내년 경제성장률 성적표도 좋지 않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Fitch)는 내년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9%로, 하나금융연구소는 1.8%, 한국금융연구원은 1.7%로 전망했다. 이밖에 현대경제연구소 2.2%, 국회예산정책처는 2.1%로 내다봤다. 한국은행은 지난 8월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2.1%로 예상했다. 다만 한국은행은 연내 추가 발표를 앞두고 있어 경제성장률 하향 가능성이 점쳐진다.
국제통화기금(IMF, 2.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 아시아개발은행(ADB, 2.3%) 등 국제기구들도 내년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대 초반으로 제시했다.
◆ 미중 갈등·우크라 사태 등 대외변수 여전...글로벌 경기 위축시 한국 경제 '타격'
내년 이후 상황도 녹록지 않다. 미·중 패권 갈등,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글로벌 경기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 이같은 장기 악재가 계속될 경우 경제적 타격은 불가피하다.
KDI는 "미국 금리인상 가속화가 지속되거나 글로벌 경기가 크게 위축될 경우, 우리 경제의 성장세도 수출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더욱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가속화되며 달러화 강세 현상이 지속될 경우, 여타 국가의 물가상승 압력이 확대되고, 글로벌 교역이 위축되면서 우리 수출도 작지 않은 부정적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경기가 제로코로나 정책과 부동산시장 위축 등으로 급락할 경우, 중국 수요 부진으로 우리 수출이 둔화될 수 있으며, 중국의 생산 차질이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이어지면서 하방 위험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 점령의 우크라 남부 헤르손시 시민들이 당국의 대피 권고에 따라 크림반도로 향하는 버스로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2022.10.23 [사진=로이터 뉴스핌] |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원자재 곡물가격 상승 가능성도 언제든 열려있다.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예상했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벌써 1년 넘게 지속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를 우회적으로 지원하는 유럽 서방국들을 제재하기 위한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 사태가 이어지면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기도 했다.
KDI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되면서 원자재와 곡물가격이 급등할 경우, 전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과 경기둔화 압력이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국내 금융시장 상황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앞서 채권 시장을 뒤흔든 레고랜드 사태, 흥국생명 콜옵션 사태 등이 대표적 위협요인이다.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도 금융시장 경색을 불러올 수 있다.
KDI는 "민간부채가 높은 상황에서 금리상승은 경기에 작지 않은 하방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회사채 시장을 중심으로 기업 자금조달에 차질이 발생하고 확산될 경우, 투자를 중심으로 성장세가 더욱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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