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 지난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별개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평화협상에 임해 종전해야 한다고 주장한 마크 밀리 미 합동참모본부(합참) 의장이 지난 16일(현지시간) 국방부 청사에서 가진 언론 브리핑에서도 다시 한 번 평화협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CNN방송에 따르면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에서 철수하는 정치적 해결책이 있을 수 있다"며 "당신이 힘이 있고 상대방이 약할 때가 협상 적기다. 그리고 아마도 정치적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밀리는 우크라 전쟁이 9개월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는 "매번 실패"했지만 우크라는 "성공적인 수복작전에 이은 성공"을 이끌고 있다면서 지금은 러시아 병력 손실이 "진짜 크다"고 설명했다.
미 국방부 청사에서 브리핑하는 마크 밀리 합동참모본부 의장. 2022.11.16 [사진=로이터 뉴스핌] |
올 겨울 땅이 얼면 러시아와 우크라군 모두 육지전과 시가전 모두 어려워 향후 2~3개월 동안은 격렬한 전투는 없을 것이라고 군사 전문가들은 말한다. 절기상 당장 이달 말부터 우크라에는 초겨울 비가 내리기 시작해 땅이 젖어 장갑차가 이동하기가 힘들다.
이때 러시아는 내년 다시 본격적인 전투에 임하기 위해 신병을 훈련하고 무기 확보에 나설 것이란 설명이다. 겨울을 전략적 휴식기로 활용, 지금처럼 우크라 기반시설에 공습은 하겠지만 그 규모는 축소하고 빈도는 적어질 것이란 게 미 국방부의 예측이다.
중동 전문 카타르 방송사 알자지라는 "러시아가 이란으로부터 고정말 타격의 드론을 더 구입하고 있다. 자국에서는 무기 양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밀리 합참 의장은 지난주 뉴욕 이코노믹클럽 행사에서도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러시아와 우크라 그 어느 쪽도 전쟁에서 승리할 가망은 없다면서 우크라가 일련의 수복 작전에서 소기의 성공을 거뒀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우크라 영토의 18%를 점령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군사적 관점에서 볼 때 러시아군을 전부 몰아낼 확률은 높지 않다"며 "곧 전술적 전투 활동이 둔화될 것이다. 이때가 정치적 솔루션을 가동하는, 적어도 가동하기 위한 초기 논의를 시작할 기회의 창"이라고 주장했다.
◆ 美CIA 국장, 최근 우크라·러시아 접촉...'정치 해법' 제안했나
밀리 의장이 말하는 '정치적 해법'이 정확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해법 제안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부(CIA) 국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지난 15일 우크라를 방문해 젤렌스키를 비공개로 면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러시아의 세르게이 나리시킨 대외정보국(SVR) 국장도 만났다.
이는 마치 미국이 양국 간 대화를 중재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듯한 모습이다. 실제로 번스 국장은 주러시아 대사를 지낸 바 있는 러시아 전문가이자 외교통이다.
전쟁 개시 전인 지난해 11월, 바이든 대통령은 번스를 모스크바로 파견해 크렘린궁 고위 관리들을 만나게 했고 "우크라에 침공한다면 막대한 후과에 직면할 것"이란 내용의 바이든 서한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전달한 바 있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 외교부 부장관은 17일 번스 미 CIA국장이 최근 나리시킨 SVR 국장을 만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두 사람이 "민감한"(sensitive) 문제들에 대해 논의했다고 알렸다.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 외교통'인 번스를 우크라에 파견한 것은 협상 토대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달 초 우크라를 방문, 젤렌스키를 면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역시 비공개 일정으로 진행됐는데, 그는 젤렌스키에 전쟁을 외교적으로 해결해야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우크라에 레버리지(leverage·지렛대)가 있는 협상 아이디어를 제안했다는 소식통발 보도가 나왔다.
볼로도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젤렌스키, 푸틴에 "공개 회담하자" 제안
젤렌스키도 협상을 재개할 마음이 있다는 뜻을 조심스레 내비쳤다. 키이우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젤렌스키는 16일 기자들과 만나 "푸틴이 직접 협상을 원한다는 시그널을 서방 국가들로부터 전달받았다"며 "러시아가 공개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전형적인 비공개 협상 대신 공개 회담을 제안했다"고 알렸다.
푸틴의 협상 의사를 전달한 서방국은 미국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은 번스 국장이 면담하고 하루 뒤이기도 하다.
젤렌스키의 공개 회담 제안은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며 선을 그었던 종전 입장에서 크게 변화한 것이다. 러시아군의 '부차 학살' 사건 이후 그는 전쟁범죄자와 대화를 원치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협상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러시아군의 전면 철수 ▲전쟁범죄자 처벌 등을 제시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에서 전면 철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젤렌스키가 공개 회담을 제안한 것은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는 협상에 들어가기 전 한 번은 푸틴과 마주할 필요가 있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젤렌스키의 공개 회담 제안에 러시아 측은 아직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wonjc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