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기락 기자 = 공소장에 범죄의 일시·장소·방법 등 일부가 다소 불명확하더라도 이와 함께 적시된 다른 사항들에 의해 공소사실을 특정할 수 있다면 공소제기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다시 나왔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사기, 영유아보육법위반 혐의로 원심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경기도 이천의 한 어린이집 원장 A씨에 대한 상고심을 열어 원심 판결을 모두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환송했다.
A씨는 2015년 9월부터 2016년 9월경까지 학부모 290명으로부터 매월 특별활동비 및 교재비 등 필요경비 명목으로 원아당 17만원을 납부하면 전액을 항목별로 특별활동 교재·교구 구입비로 사용할 것처럼 속여 총 5억7120만원 중 일부를 편취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교재판매회사 대표인 B씨와 공모해 B씨의 친인척 명의로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로부터 2억433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알선해준 뒤, 교재를 구입한 것처럼 속여 학부모들로부터 받은 경비 중 1억5200여만원을 대출금을 변제하거나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도 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상고심 쟁점은 공소사실에 피해자들이 실제 기망당한 날이나 처분행위를 한 날이 정확히 특정돼 있지 않은 점, 각 피해자가 실제로 납부한 필요경비를 개별적으로 추적·확인하는 방식이 아니라, 학부모 한 명을 기준으로 어린이집으로부터 실제 교재비를 초과해 취득한 총 금액을 각 아동의 재원일수에 따라 일괄적으로 안분하는 방법으로 피해액을 특정하는 경우 공소제기 절차가 무효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A씨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했다. A씨의 공소사실이 특정됐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공소기각은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돼 무효에 해당, 심리 없이 소송을 종결시키는 형식적 재판이다.
하지만 대법은 하급심과 다르게 판단했다. 공소장에 범죄의 일시·장소·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았더라도 공소범죄의 성격에 비춰 그 개괄적 표시가 부득이한 경우에는 그 공소내용이 특정되지 않아 공소제기가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은 "공소장에 범죄의 일시․장소․방법 등의 일부가 다소 불명확하더라도 그와 함께 적시된 다른 사항들에 의하여 그 공소사실을 특정할 수 있고, 그리하여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없다면, 공소제기의 효력에는 영향이 없다"고 했다.
대법은 "피해자마다 포괄일죄에 해당하는데, 그 범행의 시기 및 종기가 2015년 9월경부터 2016년 9월경으로 어느 정도 특정되어 있고, 피해자들과 각 피해자별 피해금액의 합계가 정확하게 특정되어 있다"며 "그 기재와 같은 범행방법에 의해 기망당하여 필요경비의 용처 등에 관하여 착오에 빠진 피해자들이 필요경비를 납부하였다는 것으로 기망의 수단 또한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특정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대법은 지난 2008년 7월과 2010년 4월에도 이 같은 취지로 판결한 바 있다.
people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