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동훈 기자 = 윤석열 정부는 지난 1년간 문재인 정부 때 도입한 규제 일변도 부동산 정책을 허물었다. 과도한 규제가 되레 집값 폭등을 부추긴 데다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집값 하락기 접어들면서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윤 정부의 대표적인 규제완환 방안인 '1.3 부동산 대책' 시행 이후 불확실성이 증폭하던 주택시장이 진정세를 보였다. 규제지역 해제, 대출규제 완화, 안전진단 기준 완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지역 해제, 전매제한 완화, 실거주 의무 폐지 등이 대표적인 추진 내용이다.
집값 상승을 억제하면서 주택시장 연착륙에 집중하고 있지만 불안요소는 남아 있다. 특히 전국을 뒤덮고 있는 전세사기는 자칫 부동산 민심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현 정권의 발목을 잡을 요인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대책과 깡통전세 확산으로 세입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정책 도입이 윤 정부 부동산정책의 시험대가 될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또한 부동산시장 불황에 따라 공급물량이 감소하고 있는 점도 풀어야 할 숙제다. 주택 공급을 충분히 해 서민들이 살 수 있을 만한 저가 주택을 내놓고 연착륙까지 함께 해야하는 수준 높은 정책기법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 세금·대출·청약제도 규제완화로 '경착륙' 우려 완화
10일 부동산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는 지난 1년간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한 부동산시장 규제 정책을 완화하면서 시장 정상화에 힘을 쏟고 있다.
규제 일변도 정책이 해소되면서 주택시장의 급격한 변동성이 잦아들었고, 연착륙 기대감이 나오는 상황이다. 시장을 옥죄는 정책이 효율성보다는 부작용이 크다는 게 윤 정부의 생각이다.
취임 이후 금리인상과 유동성 축소 등으로 집값이 급격히 하락하자 전방위적으로 규제 완화 정책을 도입했다. 지난해 6월부터 4차례 주거정책심의위원회(주정심)를 열어 순차적으로 부동산 규제지역을 해제했다. 규제지역에서 해제되면 세금, 대출, 청약 등에서 완화된 기준을 적용한다.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해 민간 시장의 활성화도 모색했다.
이후 추진한 '1.3 부동산 대책'은 기존의 규제 방안을 대거 허문 정책으로 평가된다. 규제지역을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용산구 등 4곳만 남기고 모두 해제했으며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해제 ▲중도금대출 보증 분양가 기준(12억원 이하) 폐지 ▲1주택 청약 당첨자 기존주택 처분의무 폐지 ▲무순위 청약 자격요건 완화 등을 적용했다.
1.3 대책 이후에는 집값 하락폭이 줄었고 사실상 개점휴업에 들어갔던 거래량도 회복세를 보였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올해 석달째 2000건을 넘었다. 올해 1월 1418건에서 2월 2456건으로 급증한데 이어 3월에도 2980건으로 늘어났다. 4월에는 3000건 돌파가 점쳐진다.
물론 정부는 집값 상승에 대해서는 경계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압구정동과 목동 아파트지구, 여의도 등에 지정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1년 연장했다. 이 지역에서는 이른바 '갭투자(전세를 끼고 매입)'가 불가능하다. 투기수요는 차단하고 실수요자 중심으로 거래시장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주택담보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은 규제지역 해제 등으로 완화했지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유지하며 과도한 대출을 통한 주택 매입을 제한하고 있다.
◆ 깡통전세·공급축소·미분양확산 등 과제 남아
정부가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 해제로 집값이 급격히 하락하는 '경착륙'에 빠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그러나 전세사기, 깡통전세 확산과 주택공급 감소 추세 등은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전세사기로 불거진 '깡통전세'로 세입자의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정부가 '특별법' 도입해 지원에 나섰지만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온전히 회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도 보증금을 직접적으로 보상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주택시장의 하방압력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전세사기, 깡통전세 문제가 확산할 공산이 크다.
전세 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윤창빈 기자] |
전세시장 불안은 매매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매맷값 대비 전셋값 비율인 전세가율이 하락하면서 투자 리스크가 높아진다. 시장 불안이 지속하면 주택 거래량이 다시 주저앉을 가능성이 있다. 기존 집주인들은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워져 시장 혼란이 불가피하다.
주택공급이 감소세다. 지난 3월 아파트 인허가와 착공 연면적은 각각 179만㎡와 70만㎡로 전년동기 대비 3분의 1로 줄었다. 인허가와 착공 면적 모두 관련 집계를 시작한 2012년 이후 최저치다. 원자잿값 상승으로 주택공급에 따른 수익성이 악화한 데다 매수세 감소로 시행사, 건설사가 신규 사업을 꺼리고 있어서다. 인허가, 착공 실적이 줄어들면 2~3년 후 공급 감소로 이어진다.
미분양 주택의 불안감도 여전하다. 매월 7000가구~1만가구 늘던 미분양주택 증가세가 주춤하지만 총물량에서는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 3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이 7만2104가구로 작년 4월(2만7180가구)보다 2배 넘게 증가했다. 정부가 판단하는 미분양 위험 수위는 6만가구 안팎이다. 미분양 주택이 늘어나면 건설사 파산, 주택공급 감소, 매수심리 악화 등에 영향을 미친다. 윤 정부가 5년간 270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시장 정상화를 저해하는 요소들을 완화해 시장 연착륙을 유도하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정책 방향"이라며 "전세사기 확산으로 불거진 깡통전세 문제와 주택공급 감소 현상 등은 보다 적극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 팀장은 "초과이익환제 개편안, 실거주의무 폐지 등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시행하지 못하는 정책으로 시장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며 "고금리,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매수심리가 빠르게 회복하기 어려운 만큼 실수요자를 위한 추가 지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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