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정성훈 기자 =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제안한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전제로 산업안전보건청(산안청) 설치를 주장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 업무를 전담할 별도의 정부조직을 신설하라는 요구다.
현재도 산업안전보건 관련 업무는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본부에서 수행 중이다. 다만 정책을 다루는 행정 조직과 실무를 다루는 기술 조직이 혼재돼 있어 업무의 전문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산업안전보건청이 신설되면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승격돼 산업안전감독·규제·조사·예방·지원 등 실무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 조직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본부를 두고 별도의 정부조직을 만드는데 대한 거부감도 있다. 현장 규제가 늘어나면 기업들의 경영 부담도 커질 것이란 우려다.
◆ 與,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 유예 조건 산안청 설치 요구…왜?
민주당은 지난 1일 의원총회를 열고 여당이 제안한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 유예안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뒤 기자들과 만나 "산업 현장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더 우선한다는 기본 가치에 충실하기로 해 정부·여당의 제안을 거부하기로 했다"며 "현재 중대재해법은 그래로 시행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처리 촉구 규탄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4.02.01 leehs@newspim.com |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 사고 등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내용이다. 2022년 1월 27일 5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했고, 지난달 27일부터는 2년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5인 이상~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전면 적용됐다.
앞서 국민의힘은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을 2년 유예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국회서 통과시키자고 야당에 제안했다. 이에 야당은 현상의 선제조건으로 산안청 설치를 수용하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산업안전보건업무는 전문적이고 능동적인 업무 수행이 요구되는데, 현재 고용부 산하 조직으로는 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를 전격 수용해 산안청 명칭을 '산업안전보건지원청'으로 변경하고, 단속·조사 업무를 줄이는 대신 예방·지원업무를 강화하는 쪽으로 기관의 역할을 조정하는 협상안을 만들어 야당에 제시했다. 하지만 야당의 '몽니'에 막혀 결국 여당이 제안한 중대재해법 개정안은 폐기될 상황에 처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중소기업계는 "남은 2월 임시국회에서 이 법안이 다시 논의되어 처리되기를 간곡히 호소한다"고 촉구했다. 아직 여야 간 재협상의 여지는 남아있지만, 여당이 온전한 산안청 설치를 수용하지 않는 이상 진전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윤 원내대표는 홍 원내대표와의 재협상 가능성에 대해 "지금 만날 분위기가 아니다"고 일축했다.
산안청 설치는 지난 2018년 처음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이후 문재인 정부 초대 고용부 장관을 지낸 김영주 민주당 의원이 2020년 7월 산안청 설치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들고 나왔다. 산업재해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전담 정부 기관인 산안청을 신설해야 한다는 취지다. 당시 야당 의원 40명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급물살을 타던 산안청 설치 논의는 '이중 규제의 벽'에 부딪혔다. 현장 규제 기관이 늘면 중대재해법보다 더 어려운 현장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고용부 산하에 산업안전보건 업무를 전담할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신설해 일단락했다.
◆ 산안청 설치시 고용부 산업안전보건본부 조직 분리 가능성
야당이 요구하는 산안청 설치시 고용부 산하 산업안전보건 전담 조직인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조직 분리돼 승격될 가능성이 높다.
산업안전보건본부는 고용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의 전신이다. 지난 2021년 7월 1일 대통령령인 고용노동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를 개정하면서 출범했다. 조직 지위도 승격돼 본부장은 '1급 실장급'이 맡았다. 그동안 산업안전보건정책의 수립·총괄,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재정적·기술적 지원 등을 수행했다.
산안청 승격시 산업안전보건본부가 담당해 온 산업안전감독·규제·조사·예방·지원 등 실무 업무가 고스란히 이관될 것으로 예상된다. 본부는 정책 기능만 남아 고용부 노동정책실로 이관되거나, 별도의 TF 조직으로 꾸려질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120여명의 산업안전보건본부 직원은 산안청으로 옮겨가거나, 고용부 본부로 돌아오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부 관계자는 "현재 산업안전보건본부는 행정직 위주의 집단으로, 기술직 직원은 10% 남짓에 불과하다"면서 "산업청 신설시 기존의 인력들은 외청으로 가야 할지 본부에 남을 시 선택해야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기술직 직원들이야 당연히 외청으로 가는 선택을 하겠지만, 기존의 행정직 직원들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통상적으로 '청' 단위의 조직은 '차관급'이 기관장을 맡는다. 조직·인사·예산은 독립적으로 운영한다. 조직 규모도 본부 기준 500여명에 이른다. 정부 출범 이래 처음으로 2020년 9월 8일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 조직에서 외청으로 승격한 질병관리청의 경우, 출범 당시 본부와 소속 기관을 포함해 907명이던 조직이 1476명까지 늘었다. 지난해 8월 기준으로는 이보다 100여명 늘어난 1554명(본부 515·소속 1039)까지 확대했다.
산안청 설치시 질병관리청 승격 사례를 벤치마킹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1본부장 2정책관 9과 3팀인 산업안전보건본부는 본부에 120여명이 근무 중이고, 지방의 산업안전 담당 조직까지 포함하면 900여명에 이른다. 산안청 승격 시 본부 인원은 최소 2~3배, 지방 조직도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산안청 설치에 대한 여전한 우려가 남았다. 산안청의 감독·수사 기능이 더 커질 경우 기업들이 이중 규제를 받아야 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정부 관계자는 "민주당의 요구는 산업안전보건본부의 예방 기능과 감독, 수사 기능을 그대로 이어받아 청으로 확대 개편하자는 것"이라며 "이에 국민의힘에서는 감독·수사를 규제하는 기관을 더 키울 경우 업무 이원화, 기업들의 이중 규제 불만 등이 나올 것을 우려해 신중한 입장"이라고 전했다.
j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