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스캠'은 상대에게 접근해 친분을 쌓은 뒤 돈을 요구하는 사기 행각이다. 범죄자는 사칭 계정과 가짜 범죄 사이트를 이용해 자신의 신분을 감춰 피해자들이 대처하기 힘들다. 뉴스핌은 로맨스 스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고, 범죄 피해를 줄이기 위한 수사·법적 제도를 소개한다.
[서울=뉴스핌] 방보경 기자 = #.범죄심리사 박지민(가명·36) 씨는 지난해 로맨스 스캠 사기범에게 '네 정체를 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계정이 해킹을 당하게 된 건 그 이후의 일이었다. 미국과 중국, 인도네시아와 파키스탄에서 로그인을 시도했다는 기록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찍혔다. 비트코인을 요구하는 협박 메일이 날아오고 중국 공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민 씨의 일상은 가파르게 위태로워졌다. 다른 사람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몸이 저도 모르게 떨렸다. 문이 '땡' 하고 열리기도 전에 소리소문 없이 죽을 것 같았다. 지민 씨는 이 공포의 정체를 알았다. 자신이 피해자들의 증언에서 수 없이 확인했던 트라우마였다.
로맨스 스캠으로 인해 피해자가 겪는 고통은 재산 피해 그 이상이다. 26일 원광대학교 경찰학연구소에서 발간한 '로맨스 스캠 범죄 현황 및 대응방안에 대한 고찰'에 따르면 영국 피해자들 중 42%는 건강과 삶에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로맨스 스캠 진정인 조사를 받고 나온 20대 여성이 경찰서에서 숨지기도 했다.
이는 피해자들이 겪는 2차 가해 때문이다. 로맨스 스캠은 범죄가 온라인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피해자와 범죄자의 거리를 벌리기 어렵다. 또한 총책, 인출책 등 여러 명이 움직이는 범죄 특성상 범죄자 한명을 차단해도 다양한 방식으로 연락이 오기도 한다.
실제로 사기범은 "돈이 필요하다"며 동정을 유발하다가도 태세를 전환해 "돈을 내놓으라"며 협박해 오거나, 지속적으로 피해자에게 연락하며 "한국 경찰은 나를 잡지 못한다"며 조롱하기도 했다. 범죄자가 피해자의 개인정보와 금융정보를 취득해 피해자가 스마트폰을 쓰고 있을 때 실시간으로 감시당하는 사례도 발견됐다.
여러 피해자들에게서 극심한 우울증 증세도 포착됐다. 한소은(가명·33) 씨는 남편의 도움이 있었음에도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범죄자와 연인 관계일 거라는 몰이해는 어떻게 넘겼지만 스스로의 어리숙함을 견딜 수 없었다. 소은 씨는 "빚을 갚아가면서, 한달에 한번 돈이 빠져나가는 알림을 볼 때마다 옛날 일이 생각나 힘들다"고 토로했다.
피해자들은 광범위한 복지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피해자들은 수사 과정에서부터 "(사기범에게) 마음이 남아 있냐" "왜 이런 범죄에 당했냐"는 질문을 듣고 심리적 타격을 입기도 한다. 지민 씨는 "(피해자들은) 심리적으로 취약한 만큼 경찰서에 가는 것도 힘들다"며 "로맨스 스캠은 그루밍과 가스라이팅이 섞인 범죄인 데다가 사이버 스토킹까지 연결돼 있어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수사기관에서는 로맨스 스캠을 사기로 분류해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도움을 요청할 곳이 마땅치 않다. 한국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스마일센터의 경우 살인·강도·방화·강간·상해 등 강력사건을 지원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만약 로맨스 스캠 피해자가 성범죄까지 노출됐다면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나 해바라기센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심리적 착취만 당했을 경우 지원을 받기는 어렵다.
윤해성 형사사법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피해자 구조금은 현재 살인·강도에 한해서만 있는데 이를 사기범죄에 대해서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보이스피싱의 경우 은행에서 남은 카드 포인트를 모아 사기 피해자들에게 지원하는 방안이 시범적으로 시행된 바 있다"고 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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