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증원을 둘러싼 의정(醫政) 갈등이 3개월 가량 장기화되면서 의료계에 변화의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수술을 받아야 하는 중증환자나 응급환자들은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전공의들이 이탈한 3차 상급종합병원들은 진료가 차질을 빚으면서 경영이 악화되고 있다. 반면 개원의, 2차 종합병원)에는 환자들이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간호사들의 역할은 법적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의정 갈등의 장기화로 나타난 명암(明暗)을 살펴본다.
#. 회사원인 40대 남성 A씨는 지난 3월 건강검진 결과 상급종합병원에서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췌장암이나 간암일 수 있다는 얘기였다. A씨는 며칠간 서울 시내에 있는 상급종합병원에 예약하려 했지만 최소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A씨는 "가족력도 있어 수 개월간 불안함 속에서 진료를 기다렸다"며 "진료 일정도 여유가 없고 사람이 많아 불편함이 컸다. 진료와 통원 등 제대로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호소했다.
[서울=뉴스핌] 신수용 송현도 조준경 기자 =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석 달 가까이 이어지며 진료나 검사가 미뤄지는 등 환자들이 겪는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의정갈등 명암] 글싣는 순서
1. 제약·바이오, 실적 타격 불가피…임상도 줄줄이 연기
2. 중증환자만 받는 대학병원…진료체계 긍정 신호?
3. 병원 문턱 높아지자 환자 수 감소…건강보험 재정 개선 효과
4. 최대 피해자는 환자…응급실 뺑뺑이·진료지연 '악순환'
5. 대형종합병원 경영 악화, 관련 종사자 무급휴가 권고 등 '불안'
6. 비대면·원격 진료 '탄력'…법제화 기대감
7. 진료지원간호사(PA) 법적근거 마련될까…보호 방안은
8. 尹-李 공감대 형성했지만…관련 입법 '난항'
[서울=뉴스핌] 이호형 기자 = 연세대 의과대 교수들이 30일 오전 '주 1회 휴진'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한 첫날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수술실 입구에 정막이 흐르고 있다.. 2024.04.30 leemario@newspim.com |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2월 초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약 3개월간 전공의 집단 사직 등 의료 대란이 길어지며 의료 공백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다.
회사원인 B(33·남) 씨는 "평소 위장이 좋지 않아 1,2차 병원을 찾아도 차도가 없어 종합병원에 가야 하는데 걱정이다. 평소에도 3~4개월씩 기다려야 했는데 지금은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예약 엄두가 안 난다"고 토로했다.
의료대란으로 3차 상급종합병원이 병상 조정에 나서면서 수술 후 입원 중인 환자들이 퇴원 후 질환 발병이나 추가적 회복을 위한 기간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달 19일 총회를 열고 전국 20개 상급종합병원에서 신규 외래·입원 환자 진료를 재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장암으로 수술을 받은 황미숙(61) 씨는 강북삼성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황씨는 "입원 기간을 최대 14일로 제한을 두고 있어서 전보다 짧게 머무를 수밖에 없다"며 "퇴원하고 집에 가긴 어려워 요양병원이나 암병원에 가야 하는데 간병인도 필요하고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치료도 있어 일주일에 약 140만원이 넘게 나올 정도로 가격이 비싸 걱정이다"고 우려했다.
이어 "친척 중에 몇 달 전 뇌졸중이 왔는데, 서울 시내에서 응급실을 3시간 찾지 못하다 결국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서울대병원에 암 재활 치료를 받으러 온 박모(55) 씨는 "암은 계속해서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사태가 길어지니 불안하다"며 "조속히 (의정)대화가 이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정 갈등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여기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의대 교수는 이달부터 주 1회 휴진에 들어갔다.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도 내달 3일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하기로 뜻을 모았다.
또한 서울성모병원 등 8개 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가톨릭대 의대는 내부 설문 조사를 통해 서울성모병원 외에 다른 병원 교수들의 휴진 여부도 결정할 예정이다.
환자단체들은 의료 공백 장기화로 일종의 의료 서비스 '셧다운' 사태를 우려했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위원회 회장은 "의료계가 환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공포스러운 상황"이라며 "중증 질환이나 만성질환자들은 1,2차 병원 이용 불가능한데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성토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병동 폐쇄와 '주 1회 휴진'은 환자에 대한 일종의 '인권침해'"라며 "환자들이 인내하면서 3개월 가까이 버텨왔는데 여기에 일주일에 한 번씩 쉰다고 하면 진료 일정을 조정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 쉽지 않은 부분"이라고 우려했다.
강북삼성병원에서 만난 이교춘(68) 씨는 "지금도 대전과 보령 등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이 병원을 찾는 등 의사 수 증원은 필요하다"며 "다만 숫자만 늘릴 게 아니라 정부에서 지역별 수요를 정확히 조사해 지역에도 대형 병원을 만들고 명의들도 올 수 있도록 관련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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