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 "투기수요 대출에 대해 심사를 강화하는 건 바람직하지만 가계부채 관리 속도가 다소 늦어지더라도 실수요 대출이 제약받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가계부채 하향 안정화라는 정부 방침은 변함없다. 시장 현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은행들이 더욱 효과적인 대출규제를 스스로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김병환 금융위원장)."
가계부채가 역대 최대 수준에 도달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말 가계신용(가계대출+판매신용)은 1896조20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13조8000억원이나 증가했다.
정광연 금융증권부 차장. |
3분기 상승세는 더 가파르다. 이미 5대 은행 가계대출만 7월 7조1600억원 증가에 이어 8월에는 무려 9조6200억원이 급증했다. 사상 첫 가계부채 1900조원 시대가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지적이다.
2단계 스트레스 DSR을 시작으로 이달부터 은행권에서는 1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제한 등 본격적인 대출규제가 시작됐다. 실수요 대출 피해 등 충분히 예측된 후폭풍이 시장을 뒤덮고 있지만, 일관성있는 정책으로 중심을 잡아줘야 할 금융당국이 오히려 혼선을 키우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두 금융당국 수장의 엇갈린 발언이 대표적이다.
잇단 은행권 대출규제에 대해 4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속도조절'을 언급하자 6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좀 더 강력한 자율규제에 방점을 찍었다. 불과 사흘사이에 정반대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 나오자 시장에서는 "어느 장단에 맞추란 말이냐"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을 최대한 막으라면서 동시에 실수요자 피해는 없도록 대출의 유연성은 키우라는 게 당국 주문"이라며 "얼마전까지만 해도 대출기간과 금리까지 개입했다가 갑자기 '알아서 잘 하라'니 답답할 뿐"이라고 밝혔다.
실수요자 피해 축소를 주문한 금융당국이 정작 실수요자에 대한 개념조차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아무리 은행권 자율규제에 초점을 맞춘다고 해도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은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어디까지를 실수요로 볼 수 있을지 여부도 은행들이 가장 잘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결단의 부담을 은행권으로 넘긴바 있다.
전문가들은 기록적인 가계부채의 원인으로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대출을 일관되게 지목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확대한 정책대출이 집값 상승의 발판으로 작용하며 주담대가 급증하는 악순환으로 연결됐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가계대출 상승세를 꺾기 위해서는 정책대출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저출생을 해소하기 위한 신생아특례대출 등이 현 가계대출 규제추세와 상충된다는 우려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금융당국은 "시기와 상황에 맞춰 대응하고 있다"며 원론적인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다.
이미 시장에서는 당국이 신뢰를 잃었다는 차가운 반응이 팽배하다. 또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책의 기본은 일관성과 통일성"이라고 잘라 말했다. 순식간에 '대출난민'으로 전락한 서민들의 고통 해소를 위해서라도 금융당국의 신뢰있는 가계부채 정책 마련이 시급한 때다.
peterbreak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