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강필성 기자] 이건희 삼성 회장이 자신을 상대로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차명재산을 분배하라"며 소송을 제기한 형 이맹희씨와 이숙희씨 등 일부 형제를 겨냥해 "헌법재판소까지 가겠다"며 단호한 입장을 피력했다.
지난 2월 이맹희씨가 차명주식에 대한 소유권을 요구한 소송을 제기한 이후 이건희 회장이 공식적으로 입을 연 것은 이번이 최초다.
이건희 회장은 17일, 평소 서초사옥의 출근길에 잘 이용하지 않던 로비를 통해 출근하면서 기자들에게 "한 푼도 내줄 생각이 없다"며 '합의 불가'의 강한 입장을 전달했다.
그는 "대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까지라도 가겠다. 선대 회장 때 다 분배가 된 것이다. 각자 다 돈들을 갖고 있고 CJ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삼성이 너무 크다 보니 욕심이 나는 것"이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이건희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이번 소송전이 사실상 장기전에 돌입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소송전이 진행되면서 양측이 원만한 합의를 이루지 않겠냐는 재계와 법조계 일각의 전망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된 셈이다.
이맹희씨와 이숙희씨 등 소송을 제기한 형제들이 그동안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데 따른 '경고성'으로도 읽힌다. 선대 회장 생존에 이미 분배가 끝난 문제라는 발언이나 CJ를 언급한 것도 이런 측면으로 해석된다.
실제 이맹희씨는 소송 제기 직후 국내 들어와 입장을 표명할 계획까지 세웠을 만큼 이번 소송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맹희씨는 소송을 제기한 2월 중순 '판결 전 합의로 일정 지분을 양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이 이어지자 법률대리인인 화우 측에 "서울에 직접 가서 소송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겠다"고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화우 측 한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이맹희 회장이 국내에 들어오는 것이 또다른 오해와 추측을 만들어낼 수 있어 만류했다"고 전했다.
소송 참여 직후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던 이숙희씨도 지난해부터 여러 로펌에 소송 자문을 구하는 등 치밀한 법률적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로펌업계의 한 변호사는 "이번 소송이 화해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내기는 예초부터 어려운 상황이었다"면서 "법원의 조정이 어떻게 이루어질 지 모르겠지만 양측의 의지가 매우 강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화우 측에서는 이병철 창업주의 유언장이 따로 없이 구두로 전해졌고 이 역시 일부 형제들만 들었던 만큼 법적으로 판단해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지금은 1조원 규모의 소송이지만 향후 에버랜드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등을 포함시키면 소송 규모도 2조원이 훌쩍 넘어갈 전망이다.
다만 결과가 날 때까지 시간은 아직 불투명하다. 이건희 회장과 이맹희씨 등 형제 모두 이처럼 팽팽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이번 소송은 1심 판결 이후로도 대법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럴 경우 최소 2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로펌업계의 또다른 변호사는 "이번 주식양도 소송은 법률적 판단을 구하는 간단한 소송이지만 증거절차를 복잡하게 늘리고 쟁점을 확대하면 얼마든지 재판을 늘려 장기전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소송이 길어지면 소송 주체가 바뀔 가능성도 조심스레 대두되고 있다. 이맹희씨를 비롯해 원고가 고령인 만큼 장기간 소송전에는 돌발적인 변수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때문에, 현재까지는 이번 소송과 선을 긋고 있는 CJ가 소송전이 본격화되면 그룹 차원의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이어진다.
삼성과 CJ는 옛 제일제당의 분가 당시 서운한 감정이 여전히 남아 있고, 대한통운 인수전과 최근 이재현 회장에 대한 미행사건까지 불거지면서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진 상태다.
이와 관련, CJ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소송전이 본격화되면 CJ의 기존 입장에 변화가 있을 수도 있지 않겠냐"면서 "아버지 문제라는 점에서도 끝까지 모른척 할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CJ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발언에 대해 "이건희 회장과 이맹희씨 개인간 문제"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다만, 미행사건에 대해 한마디 사과도 해명도 없이 돈만 욕심내는 수준 이하의 폄하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되는지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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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