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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프라스의 국민투표, '신의 한 수'

기사등록 : 2015-06-2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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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결과 무관하게 그리스-유로존 '윈윈' 예상"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국제통화기금(IMF) 채무 상환과 구제금융 종료를 코 앞에 두고 그리스 정부가 꺼내든 '국민투표' 카드가 사태 악화보다는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돼 주목된다.

그리스가 오는 7월5일 실시할 국민투표를 고려해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30일 연장해 달라는 요구는 거부당했고,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긴급유동성지원(ELA) 한도액을 늘려줄 수 없다고 선을 그음에 따라, 그리스는 물론 유로존 전체가 일촉즉발의 상황에 직면했다.

그러나 29일 주요외신들이 일제히 그리스가 '디폴트' 초읽기 상태라고 보도한 것과는 달리, 오는 30일(현지시각) 도래하는 16억유로 IMF 채무 상환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 대상이 민간 채권자가 아닌만큼 실질적인 디폴트 선언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확실한 디폴트 여부는 다음 달 20일로 예정된 유럽중앙은행(ECB)의 차입금 상환 여부로 판가름 날 전망이다.

유럽 채권단도 그리스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 보다는 국민투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상황을 지켜볼 공산이 크다. 우니크레디트 수석 이코노미스트 에릭 닐슨은 "많은 유연성과 인내심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유럽은 국민투표가 마무리될 때까지 그리스를 살려 둘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날 워싱턴포스트(WP)지는 그리스 국민투표가 그리스 정부는 물론 유럽 채권단 측에도 해결안이 될 '윈윈 카드'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 '벼랑 끝' 전술, 그리스 속내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출처=블룸버그통신>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국민투표 실시 방침을 밝히면서 채권단이 제시한 구제금융안은 "유럽의 근간이 되는 원칙과 가치에 위배되는 내용"이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그리스 정부 역시도 국민들에게 구제금융 반대 표를 던질 것을 촉구하며 겉으로는 채권단과 극명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국민투표에서는 찬성 표가 나올 가능성이 더 높으며, 치프라스 총리 역시 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WP지는 분석했다.

그리스 정부가 반(反) 긴축이라는 기치를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앞서 그리스 여론조사에서는 유로존 탈퇴에 반대하는 의견이 80%에 달했으며 지난 주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그리스 구제금융 지지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치프라스 총리 역시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은 자명하다. 국민투표 실시 결정을 밝히는 TV연설에서도 자신도 원하지 않지만 국민들이 찬성표를 던진다면 어쩔 수 없이 (채권단이 제시한) 긴축 결정을 따르겠노라고 밝혔다. 그는 반대표가 나올 경우의 수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국민투표에서 구제금융 반대 결과가 나오더라도 치프라스 총리가 잃을 것은 없다.

구제금융이 예정대로 종료되고 ECB까지 발을 빼게 되면 그리스는 유로존 탈퇴('그렉시트')와 함께 뼈아픈 회생의 길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치프라스 총리는 '국민의 선택'이라는 명분을 앞세우면서 무리없이 정책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일정 기간 혼란 상황이 지나고 나면 그리스 경제가 오히려 이전보다 더 단단하게 바로 설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민투표 결과 구제금융 반대 결과가 나온다면 오히려 치프라스 총리는 유럽 내에서도 입지가 강화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채권단이 투표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구제금융 협상을 실패로 마무리 짓는 '무리수'의 가능성도 없지 않아 남아있긴 하지만, 그리스가 이 같은 투표 결과를 들고 협상 테이블로 돌아왔을 때 치프라스 총리의 목소리에는 "국민의 뜻"이라는 힘이 더 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에 상당한 영향력을 쥐고 있는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IMF 총재도 그리스에 대한 채무상환 유예 또는 탕감 방안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어, 치프라스 총리에게 유리한 협상 분위기가 마련될 것이란 관측이다.

◆ 금융시장, '그렉시트 여부'보단 '불확실성'에 주목

의회 앞에서 시위하는 그리스 국민들[출처=블룸버그통신]
그리스 사태가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금융시장은 그리스의 디폴트와 뒤이은 '그렉시트' 여부 보다는 앞으로 그리스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 제거 가능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의 디폴트나 이른바 '그렉시트' 사태가 금융시장에 공포심을 주는 것은, 이렇게 유로존에서 회원국이 이탈해서 새로운 자국통화를 발행한 사례가 전례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그리고 그 파급효과가 어떨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그리스인들이 유로존 잔류를 더 원하고 있고 그리스 지도부 역시 유로화 동맹에서 떠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번 '뱌랑 끝' 전술이 결국 그리스 내 좌파의 반대를 극복하고 최종 타협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키프로스 사태 역시 막판에 자본통제를 도입하는 등 홍역을 치렀지만, 결국 유로존에 잔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키프로스의 경우 그리스보다 IMF나 유럽 쪽 자금지원을 좀 더 많이 받았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리스 위기 상황이 아직도 이전처럼 '막판 타협'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 기회가 남았다면서, '그렉시트' 불안감이 고조된다 하더라도 지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전개된 것과 같은 시장 혼란은 재연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어떤 결론이 도출되건 간에 투자자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가 어디로 향해갈 것이란 '확실성'이며, 그 동안 그리스 이슈에 상당한 탄력성을 보여온 금융시장은 항상 사태의 불확실성에 오히려 크게 동요할 수 있다고 지적이다.

그리스 사태가 이 다음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불확실성은 계속 금융시장의 위험 회피 및 안전자산 선호 심리를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단기적으로는 미 국채와 독일 분트가 수혜를 입을 것이란 전망이다. 동시에 그리스와 비슷하게 긴축 반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스페인 등 유로존 주변국의 리스크 프리미엄은 확대될 것이고, 글로벌 주식시장 역시 다소 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ABN암로 마켓리서치 대표 닉 코니스는 그리스에 대한 유로존 위험 노출 수준이 과거보다 낮은 데다 정책 관계자들의 개입 여지가 남아있는 만큼 그리스로 인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혼란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그리스 위기로 유로존의 시장 신뢰도가 타격을 입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금융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기자 (kwonjiu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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