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핌=한기진 기자 ] “박리다매가 맞다. 고가정책이 맞다.”
한국GM(제너럴모터스) 군산공장을 문닫게 만든 준중형 세단 ‘올 뉴 크루즈’는 작년 1월 출시 1~2개월 전부터 ‘권장소비자판매가격’을 놓고 내부 논란이 있었다. 노조를 비롯한 직원들은 “20~30대가 타는 준중형 세단은 가격을 낮춰 연간 내수 5만대를 팔아야 한다”면서 경쟁모델보다 가격이 높아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였다.
당시 한국GM의 CEO인 제임스 김 사장도 내심 공감했다고 한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와 야후코리아 사장을 지내, 누구보다 한국 시장에 대해 잘 알아서다.
그러나 GM 미국 본사의 방침은 달랐다. 올 뉴 크루즈의 출시가격을 1890만~2478만원으로 책정했다. 경쟁모델인 현대자동차의 아반떼(1410만~2415만원)나 기아자동차의 K3(1395만~2420만원)보다 400만원 가량 비쌌다. 대신 직원들과 달리 연간 판매 목표를 2만6000대로 낮춰 잡았다. 결과적으로 GM본사 정책은 틀렸다. 소비자들은 비싼 가격에 부담을 느껴 올 뉴 크루즈를 철저히 외면했다. 결국 출시 1년도 안돼 생산라인은 멈췄다.
GM본사가 직원들의 우려에도 고가정책을 택한 것은 한국GM의 생산단가 대비 인건비 비중이 높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 내부에서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에서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제조업의 마지노선인 10%를 훌쩍 뛰어넘는 12~13%에 달한다"라며 "이 같은 인건비로는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진단했다.
GM의 사례에서 보듯 글로벌기업 입장에서 한국은 고비용 저효율 생산구조인데다 내수 시장마저 작아 투자매력이 적다. 이는 통계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UNCTAD(유엔무역개발회의)의 세계투자보고서(WIR)를 기초로 분석한 결과, 2016년 우리나라의 외국인직접투자 비율(외국인직접투자/GDP)은 0.8%로 전 세계 237개국 중 152위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의 해외직접투자 비율(해외직접 투자/GDP)은 세계 237국 중 33위다. 한국에 투자하려는 기업은 줄어들고 나가려고만 한다는 이야기다.
이지만 연세대 교수는 “외투기업 임원을 만나면 갈등적 노사관계가 투자확대를 가로막는다고 말한다”며 “선진국처럼 새로운 가치와 생산성 향상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정부와 산업은행이 금전적 지원을 한다고 해도 한국GM의 경쟁력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GM이 언제든 한국철수 카드를 꺼낼 수 있다. GM 사태를 외국계자본의 ‘먹튀’로만 접근하지 말고 외국계 기업이 한국에 뿌리를 내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GM은 한국에서 자동차를 더 생산하려 할 것이고, 공장폐쇄로 인한 일자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우선 적대적 노사관계부터 풀어야 한다. 자동차 노사문제를 겪었던 영국, 프랑스는 대립으로 끝나 10대 자동차생산국에서 후퇴했고, 독일과 일본은 생산성과 임금구조를 병행하는 타협으로 자동차대국이 됐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한국GM보다 더 어려웠던 르노삼성차는 노사의 무분규와 성과급 체제 합의한 뒤, 지금은 프랑스 르노 본사 기준 생산성 1위 사업장이 됐다. 또한 르노삼성 부산 R&D센터에서 개발한 SUV인 QM6와 중형차 SM6는 20만대 가까이 수출하며, 공장가동률 100% 가까이 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규제 완화 등으로 우리나라의 투자환경을 크게 개선해야 한다.
좋은 사례로 네덜란드가 있다. 이 나라는 시장규모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작지만, 외국인직접투자규모는 920억 달러로 한국 보다(108억 달러) 8.5배 많다. 그 비법은 규제완화이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국가경쟁력에서 정부규제가 주는 부담 수준이 OECD 국가 중 한국은 22위이고 네덜란드는 6위다. 경제자유지수도 한국은 28위, 네덜란드는 10위다.(상위순위일수록 경제자유도가 높음)
지난해 10월 찰스 헤이 주한영국대사가 영국 투자 세일즈 장소에서 기자에게 했던 말이 큰 교훈으로 다가온다. "영국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고 싶다. 한국 부품사가 영국에서 부품을 생산한다면 영국 정부가 책임지고 공간을 마련하겠다. 영국은 최근 10년 동안 인건비 상승률이 가장 낮고 급격하게 상승하지 않는 게 강점이다."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